535page


535page

6. 충주지씨 정려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 20-2번지에 있는 정려각이다. 하동정씨 시조 정 응의 13세 충의위 군자감정 정 검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에 가담하여 왜적과 맞서 싸우다 순절하였다. 그의 부인인 충주지씨(1565~1592)는 왜군을 피해 시누이와 함께 마을 뒤 차일봉 으로 피신하던 중 왜적에게 잡히었으나 굴하지 않고 적을 꾸짖다가 시누이와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이 열행이 뒤늦게 조정에 알려져 1854(철종5년) 명정 이후 1927년에 중수하고, 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안에는 “열부 증통훈대부군자감정정검처숙인충주지씨지문 숭정사갑인월일 명정"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931년에 후손인 정두현이 짓고 쓴 중수기가 걸려 있으며, 현재 청주시 향토유산 으로 지정되어 있다. 7. 충비단비 하동정씨 시조 정 응의 13세 충의위 정 검의 아들 휘 승길(14세)이 겨우 여섯살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모가 왜적에게 화를 당하고 나이 어린 공이 어찌할 바를 모르던 중 때마침 한 노비 가 창황히 어린 공을 등에 업고 보리밭 고랑으로 숨어들어 우는 공자를 바라보다 하늘 *에 우러러 빌기를 '하늘이시여 만약 우리 공자를 살리려면 삼가 울지 않게 하소서' 하니 공자가 과연 울지 아니하여 살아났다 한다. 이에 문중에서는 충비에 은혜를 입었는데, 그 성씨와 묘가 모두 실전되어 정을 펴지 못함을 통한해 하다가 공의 묘 옆에 충비단과 비를 세우고, 보은하는 마음으로 매년 예를 갖추어 세일제를 올리고 있다.
535page

8. 덕신학교 덕촌 하동정씨 집성촌에는 정재호(1839~1899)를 중심으로 종학계가 조직되었다. 문중 자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여 오다가 재봉在鳳, 두현斗鉉, 회종晦鍾, 만용萬鎔 등의 집안 어른들이 종재와 사재를 출연하여 1906년 5월 15일 옥산면 덕촌리 33번지(만용의 저택)에서 개교하였다. 이후 1909년 8월 19일 대한제국 칙령 제62호에 의거 사립 덕신학교 인가를 받아 정재봉을 교장으로 교원수 3명, 학생수 45명이었고 교육과정은 수신, 한문, 수리, 역사, 습자, 작문, 일어, 산술, 이과, 창가, 체조였다. 덕신학교는 1911년 4월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1916년에는 4명의 교사가 82명의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나 3·1운동 이후 일제의 조선교육령에 따른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1919년 강제 폐교되고 1920년 공립소학교(현재: 옥산초등학교) 로 편입 되었다. 하동정씨 종중에서 이를 복원하고자 뜻을 모아 종재 3억원과 지역 인사들의 성금 5천여 만원 등 3억 5천여 만원의 재원을 마련하여 이곳 옥산면 덕촌리 1번지 문절 영당 아래에 2016년 3월 21일 착공 2016년 11월 15일 완공 후 덕은재라 명명하였고, 2021년 6월 18일 국가보훈부로부터 현충시설(덕신학교 기념관)로 지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