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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립운동가 마을 덕촌리
덕촌德村리는 본래 청주군 서강외이하면의 지역으로 '덕절' 이라고도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옥산면에 편입되었다.
덕촌 마을은 한양 천도를 도왔던 자초 무학대사가 지나다 보니 응봉산을 주산 으로 좌우로 산세가 뻗어 있고 앞은 부모산을 안산으로 자리잡고 있어 조선의 도읍지로 정하려 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덕을 갖춘 훌륭한 인재가 마을을 빛낼 동네라 하여 덕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1909년 설립된 덕촌교회는 당시 집성촌 특유의 보수적이고 유교에 기반한 공동체 인식이 강한 마을에 안착하여 농촌계몽과 신학문 전화 등 마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1968년 창립된 덕촌신협은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전국 유일의 리 단위 지역 신협으로 인근 주민들의 든든한 금고지기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2019년 청주시 마을 아카이브 제1호 독립운동가 마을로 지정되었고, 2023년에는 청주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26년 1월 현재 218세대에 44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2. 하동정씨 입향
하동정씨는 본관은 같으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평장공파, 예부공파, 정승공파로 나뉘며, 덕촌에는 정승공파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정승공파의 1세조는 정 응으로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 관직이 금자광록대부 金紫光祿大夫, 도첨의 좌정승都僉義左政丞, 검교 태자첨사檢校太子詹事에 이르렀다.
하동정씨 덕촌의 입향조는 광주유수廣州留守 정 목의 둘째 아들로 조선 중종 때 부사직충의위副司直忠義衛를 역임한 정광업(1467~1553)이다.
정광업은 시조로부터 10세손으로 중종조에 기묘사화(1519년)등의 혼정을 피해 청주 옥산면 오산리에 입향하였고, 그 후손들이 덕촌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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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절공 정수충(1401~1469)
공의 자는 경부이고, 하동정씨 시조 정 응의 8세손으로 조선 전기 식년사 문과에 - 급제하여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종3품),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정3품), 숭정대부 중추원판사崇政大夫中樞院判事(종1품),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종1품)등을 역임한 문신학자이며 시호는 문절이다.
공은 박통경사博通經史(경서와 역사에 널리 통달함)하시고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으며 돈 모으기에 힘쓰지 않았고 평생에 권문權門을 찾는 일이 없었 다고 왕조실록(예종1년 9월 6일조)에 기록되어 있다.
시호 문절은 학문이 높고 절개가 굳건한 이에게 내리는 것으로 뛰어난 학식과 올곧은 인품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4. 문절영당
1769년(영조45년)에 정수충鄭守忠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영당이다.
현존 건물은 1856년에 중건하고 1982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분합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다.
그 앞에는 '문절영당文節影堂'이라는 편액을 건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2015년 청주시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었다.
5. 문절공 초상
1455년(세조 원년)공께서 좌익공신에 책록되었을 때 왕명에 의하여 그려진 초상화다.
1769년(영조 45년)에 황해도 금천군 금릉의 하동정씨 종가에서 사당을 신축하고 모사본을 관리하여 오다가 훼손되어 1856년(철종 7년) 화공 이덕명이 다시 모사 하였다. 그 모사본을 문절영당에 모셨고 영정중모가影幀重模記와 같이 보관해 오다가 현재는 청주시 고인쇄박물관에 위탁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 영정과 중모기는 198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