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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남만주 최후의 독립군 사령관 양세봉 53 자적으로, 혹은 중국의용군과 힘을 합쳐 치렀을 뿐 만 아니라, 수십 차례의 국내 진입작전을 전개해 식 민지 통치당국을 놀라게 했다. 오죽하면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20여 년의 오랜 기간 동안 조선의 독립 을 꿈꾸며 용맹무쌍하게 활동한 치안의 암(癌)”이라 고 표현했겠는가? 양세봉은 1932년 2월부터 1934년 9월 순국할 때 까지, 이처럼 자랑스러운 조선혁명군의 사령관으로 활동하며 숱한 에피소드와 미담을 남긴 전설적 영웅 으로 그 이름을 깊이 새겼다. 양세봉은 그를 따르는 독립군 장병과 동포들로부 터 ‘군신(軍神)’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능한 사령관 및 철저한 동포의 보호자로서 신망을 얻었다. 조선혁명 군 중대장을 지낸 계기화(桂基華)는 양세봉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불세출의 백전백승의 군신으로서… 그 침착하고 굳센 결단성과 인자하고 자상하신 부모 같으신 성 품, 아무리 성날 일 저질렀어도 부하에게 욕하는 일 이 없으시고, 큰일을 저지른 자는 꼭 자기 곁에 있게 하여 다른 상급자가 구타하지 못하게 했다.”(「3부·국 민부·조선혁명군의 독립운동 회고」, 『한국독립운동 사연구』 제1집, 1987) 일본 육군사관학교나 중국 군관학교 혹은 유명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군 사령관이나 지휘 관으로 활약한 인물은 많았다. 그러나 만주에 이주 해 소작농으로 어렵게 생활하다가 직접 독립운동에 투신해 독립군 사령관까지 지낸 인물은 양세봉이 유 일했다. 특히 그는 정규학력이 없는 무학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부하들은 물론 한인 교민 등 민중에게 절 대적 신임과 존경을 받았던 양세봉! 이 때문에 일제 당국은 그를 암살할 흉계를 꾸몄다. 이 특별공작은 평북 강계 출신의 밀정 박창해(朴昌海)가 주도했다. 그는 양세봉을 잘 알고 조선혁명군을 도왔던 중국인 왕밍판(王明藩, 마적단 壓東洋 일원)을 매수해 양세 봉을 제거하려 했다. 왕밍판은 일본군과 괴뢰 만주 조선혁명군 독립군 부대의 군기(독립기념관 복원) 일본 관동군의 양세봉 독립군 부대 등에 대한 ‘토벌’ 결의 소식을 보 도한 『동아일보』 기사(1933.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