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page


50page

한국전쟁에서 인도의 역할(1950 - 1954) 한국전쟁에서 인도의 기여는 세계 평화와 안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인도는 1950년 6월 25일과 27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지지하였으며, 1947년 8월 분단의 아픔과 1948~1949년 파키스탄과 전쟁을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평화에 대한 의지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인도는 전쟁의 고통을 덜기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일환으로 제60 공수 야전의무구호대(60 Parachute Field Ambulance)를 파견하였습니다. 이 부대는 1950년 11월부터 1954년 2월까지 3년 이상 활동하며, 20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고 약 2,500건의 수술을 수행하는 한편, 수많은 민간인에게도 의료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인도는 한국전쟁 이후 인도 육군 제190보병여단 소속 약 5,230명 규모의 병력으로 구성된 인도 포로송환관리국(Custodian Force of India, CFI)을 파견하여 약 22,000명의 전쟁 포로 송환을 지원하였으며, 이는 전쟁 이후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 전쟁 초기 AG 랑가라지 중령의 지휘 아래 총 627명으로 구성된 부대는 1950년 11월 20일 부산에 도착하였으며, 두 개의 부대로 편성되었습니다. 랑가라지 중령이 이끄는 전방 부대는 전투지역에서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었고, N.B. 바네르지 소령이 지휘하는 후방 부대는 대한민국 육군 제1병원을 포함한 대구 지역 병원에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제60 공수 야전의무구호대는 북상하여 1950년 11월 29일 평양에서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대가 기지를 제대로 구축하기도 전에 철수 명령이 내려졌으며, 적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모든 의료 장비를 파괴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대 지휘관은 의료 장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0page

버킷 브리게이드의 이야기 서울로 철수 명령이 내려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60 공수 야전의무구호대는 별도의 수송수단이 없었지만, 생명을 구하는 의료 장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인근에서 버려진 증기 기관차를 발견하고, 강에서 물을 길어 보일러를 채우기 위해 인간 사슬을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부대는 '버킷 브리게이드(Bucket Brigade)'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1950년 12월 5일, 철도 운행 경험이 있던 두 명의 부대원은 모든 장비를 실은 이 작은 기차를 운행하여 대동강에 놓인 다리를 건넜으며, 이는 적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다리가 파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 평화기념공원에 전시된 전쟁으로 훼손된 기관차는 당시의 어려운 전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전까지의 기간 1951년 3월, 유엔군은 '용기 작전(Operation Courageous)'을 개시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전선 북쪽 약 30킬로미터 지점에서 공수작전인 '토마호크 작전(Operation Tomahawk)'이 계획되었습니다. 랑가라지 중령이 이끄는 외과팀이 이 임무를 맡았습니다. 1951년 3월 23일, '마룬 앤젤스'는 임진강 남쪽 문산리 일대에서 미군 제187 공수연대전투단과 함께 공중 강하를 실시하였습니다. 이 작전이 개시되는 동안 의료팀은 100명 이상의 부상자를 치료하고 수술을 통해 수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1951년 6월까지 제60 공수 야전구호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과 함께 가평 전투 (Battle of Kapyong)를 비롯한 여러 작전에 참여하였으며, 임진강 북쪽에서 수행된 '코만도 작전(Operation COMMANDO)'에도 참가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부대는 6일간 총 400명 이상의 부상자를 치료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후방 부대는 대구 지역의 노후한 민간 병원을 정비하고 하루 평균 200~300명의 환자를 치료하였습니다. 1953년 8월, 부대 전원은 '힌드 나가르 (Hind Nagar)'에서 포로송환관리군(Custodian Force of India)에 합류하였습니다. 이들의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이타적인 헌신은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중립국 송환 위원회 - 잘 알려지지 않은 역할 1952년에 이르러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전쟁 포로(POW) 송환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인도는 전쟁 포로의 평화로운 송환을 보장하기 위해 유엔에 결의안 초안을 제안하였고, 이 결의안은 다수에 의해 채택되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은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인도 외 4개 중립국으로 구성된 중립국 송환 위원회(NNRC)를 인도가 이끌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인도의 K.S. 티마야 중장이 NNRC 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높은 전문성과 엄정한 중립성을 바탕으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인도 포로송환관리군 (1953-1954) 유엔은 중립국 송환 위원회(NNRC)의 복잡한 임무 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충분한 규모의 군 병력을 파견해 줄 것을 인도에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SPP 토랏 소장의 지휘 아래, 약 5,230명 규모의 인도 육군 제190보병여단이 한국에 파견되었습니다. 인도 포로송환관리군(CFI)은 판문점 인근 지역에 군사 기지를 설치하고 이 곳을 '힌드 나가르(HIND NAGAR)'로 명명하였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군사 기지를 넘어, 약 22,000명의 비송환 전쟁 포로가 수용된 공간이었습니다. 인도 포로송환관리군은 이곳에서 모든 전쟁 포로를 동일한 연민과 중립성으로 대하는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당시 상황은 매우 적대적이었고, 기후는 혹독했으며, 임무의 중요성 또한 매우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군은 모범적인 기지와 공정성, 그리고 단호함을 바탕으로 어려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습니다. 인도의 한국전쟁 임무는 1954년 3월 20일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인도 총리에게 보낸 서한 "최근 수년간 어떠한 군 부대도 이보다 더 섬세하고 어려운 평시 임무를 수행한 사례는 없으며, 인도군은 모범적인 기지와 공정성, 그리고 단호함으로 이를 수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