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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25년 6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의병과 의병정신의 재조명’ 체포되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체포된 의병의 상당 수가 감옥에서 처형되었다. 부자 의병장이었던 임 창모·임학규 부자와 수십 명의 의병 간부들이 작전 중 적의 손에 무참히 살육되었다. 그리고 대토벌 기 간 중 겨우 난을 피해 은신했던 전해산과 양상기 같 은 의병장들도 그해 말 체포되어 결국 형장의 이슬 이 되고 말았다. 토벌작전 중 귀순하거나 체포한 의 병 중 일부는 전라남도 해안 일대의 도로 개수공사 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물론 일제측의 보고 내용은 어디까지나 의병(‘폭도’)에 한정된 것이었고, 토벌과 정에서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이나 여러 만행에 대해 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남한대토벌작전’ 이후의 의병항쟁 남한대토벌작전은 한말 의병항쟁에 결정적인 영 향을 끼쳤다. 이 작전이 개시되기 직전까지 의병전 쟁의 중추 세력이었던 호남지역 의병세력은 결정적 인 큰 타격을 입었다. 적의 공세를 피해 잠적했던 잔 존 의병 세력과 일부 의병 지도층마저 일본 군경의 철저한 수색작전으로 체포되어 사실상 호남지역에 서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세력은 거의 소멸되기에 이를 정도였다. 남한대토벌작전은 단순히 호남지역의 의병항쟁 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의병항쟁의 근거 지가 호남지역이라고 파악했던 일제는 호남지역 의 병을 진압하면 다른 지역에서의 의병항쟁도 함께 진 정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실제로 ‘남한대토벌’이 종 료된 뒤 전국의 의병항쟁은 급속히 퇴조하기 시작했 다.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계기로 전국에서 거세 게 타올랐던 항일의병항쟁의 불길은 점차 수그러들 기 시작하였다. 이후 황해도 지역에서 다소 활발한 의병들의 항쟁이 있었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1914년 경까지 일부 지역에서 유격투쟁을 통한 저 항이 지속되었지만, 이미 정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 는 아니었다. 결국 살아남은 의병들은 만주(중국 동 북지방)와 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동하여 독립군으 로 변신하여 새로운 독립전쟁을 준비해야만 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 부 산경남사학회 회장,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 냈다. 현재 동아대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 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근대 도시와 지방 권력』(선인, 2010), 『진실과 기억』(산지니, 2023) 등이 있다. 필자 홍순권 일본군이 그린 전북 순창 일대 호남의병 탄압 작전용 지도 (뉴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