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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군 의병장 송석래 장군께서는 1875년 음력 6월 17일 나주군 다시면 송촌리 501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字는 경환이요, 號는 서호이며, 本貫은 은진이고, 고려 때 판원사를 지내신 시조 대원의 후손으로 제 11세 장사랑 백수의 후손이요, 지용의 아드님이시다. 장군의 配는 문화 류씨 삼향으로 아들 창영, 민영, 계영을 낳으시고, 창영은 인식, 인명, 인정, 인철과 영순, 인화를 낳고, 민영은 인원, 인홍, 인엽, 화식과 효순을 낳고, 계영은 인근, 인줄과 명자를 낳고, 장손 직계인 인정은 반석과 아현을 낳았다. 장군께서는 어려서 부터 큰 뜻과 기개와 절개가 굳건하고 역사와 병서를 탐독했으며, 국운이 기울어가는 당시의 현실에 비분강개하시고, 1907년 7월, 위험을 무릅써가며 의병 수십 명을 모집하여 김태원 창의소에 참여해 김태원 장군의 중군장으로 영광 굴수산 전투에서 왜장 2명과 왜병 수십 명을 사살하고 보검, 준마 등을 노획하셨다. 또한 1908년 2월 2일 전해산, 심남일, 나상집 등과 통모하여 창평 무동 전투에서 명포수 수 명을 보내 왜장 吉田勝三郎을 사살하는 등 나주, 영광, 광주, 담양, 함평, 등 전남 일대를 누비며 맹위를 떨쳐 큰 공을 세우셨다. 이어서 1908년 4월 25 일 김태원 장군을 비롯한 의병 23명이 광주 어등산에서 은신하던 중, 왜적이 불의에 출현하여 승패를 거듭하다 위급하게 되자 장군께서는 좌충우돌하면서 왜병 1명을 죽이고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왜적의 총탄에 명중되어 순국하셨다. 장군께서 타개하신지 1세기가 되도록 그 위민충절하심이 가려져 있다가 드디어 이와 같은 공로로 199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으셨다. 이에 우리 후손들은 자랑스러운 장군의 공적을 기리어 추원의 뜻으로 정성을 다해 늦으나마 1998년 4월 6일 입비로써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不肖孫 寅正 謹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