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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5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조국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을 다시 본다’ 중국에서 이상촌 건설운동과 ‘길림사건’ 1년 2개월 정도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있었던 안 창호는 1926년 3월 2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안창호가 중 국에 다시 왔을 당시, 그는 한인들이 편안하게 살면 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이상촌을 만들 것을 구상 하고 있었다. 도산은 이상촌을 건설하기 위해 중국 의 농촌을 찾아 다녔다. 그때마다 무지한 중국 사람 들에게 많은 수모를 받았다. 때로는 길 을 가다가 중국 경찰이나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 몽둥이로 폭행을 많이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폭력에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가면 때 리던 그들도 그만 두었다. 도산은 1926년 9월 11일 상하이를 출발하여 베이징에 도착하였고, 베이징 에서 동서인 김창세와 이틀 동안 함께 지냈다. 그리고 만주로 가서 이곳 저곳 으로 도피하여 다니다가 토지를 시찰하 기 위해 북만주로 갔다. 그해 9월 22일 에는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가 하얼빈 에까지 왔고, 다음날에는 송화강 하류지 역으로 토지 시찰을 떠났다. 안창호는 이상촌 건설을 위한 적지(適地)를 찾기 위해 흥사단원인 유기석을 대동하고 만 주 지린(吉林)으로 갔다. 1927년 2월 14 일(음력 정월 13일) 지린시 대동문(大東 門) 밖에 있는 최명식(김일병의 장인)이 경영하는 정미소 대동공사의 마당 안에 있는 창고에서 도산의 강연회를 열기로 되어 있었다. 도산의 강연회는 저녁에 입추의 여지가 없이 초만 원을 이루도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위 ‘독 립지사’들은 물론 지린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7~8시경 김일병의 사회로 강연회가 시 작되었다. 그때 도산의 강연 내용은, 우리 민족이 단 결하지 못하는 여러 원인을 들고 그 해결방안과 흥 사단 정신을 고취하자고 하였다. 약 30분쯤 지났을 수양동우회 대회기념 사진(1934년 1월 4일) 아내 이혜련이 안창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193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