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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5년 7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인식과 독립운동’ 나아가 이상룡은 ‘해동성국’ 발해를 우리 역사의 중심 무대에 복원시켰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성립과 성장 과정을 당나라와의 대등한 관계 속에서 기술하고, 영토를 북으로는 송화강 유역, 남으로는 함경도 · 평안도, 동으로는 일본해(동해), 서로는 요하 (遼河)를 넘어 내몽고까지 이르는 대국이었다고 설명 하였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대한제국의 망국과 만주 망명 을 통해 정립되었다. 그가 만주 망명을 결심한 것은 그곳이 곧 단군과 고구려의 옛 영토이며,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복식과 언어는 다르지만 동일한 종족 이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만주에서 의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고토에서 행해진다는 역 사적 당위성을 마련한 것이다. 인류역사 인식, 대동사회(大同社會) 한편 이상룡은 1908년 경남 가야산 의병기지 건 설이 좌절되자, 협동학교와 대한협회 안동지회 설립 등 애국계몽운동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신 학문을 수용하고 유교 혁신을 주장했는데, 이는 전 통적인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보편적 세계 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특히 1920년대 중반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광의 (廣義)」는 유학적 관점에서 사회주의를 수용하는 논 리가 반영되어 있다. 그는 1921년 군사통일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의 북경(北京)을 여행하면서 쓴 「연계여유일기(燕 薊 旅遊日記)」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가 갖는 노동자 중심의 평등사상에 대해 호감을 나 타낸 바 있다. 그런데 「광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 자의 대동사상이 사회주의의 평등사상과 상통한다 이상룡이 김좌진에게 보낸 편지(1920년) 이상룡의 문집 『국역 석주유고』 표지 이상룡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활동 보도 기사 (『독립신문』 192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