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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석주 이상룡의 독립운동과 역사 인식 47 을 끊임없이 읽기 도 했다. 또 우리 나라 고대사와 관 련한 『부여사(扶餘 史)』 · 『고구려사(高 句麗史)』 · 『발해사 (渤海史)』 · 『신라사 (新羅史)』 · 『만주원 류고(滿州源流考)』 등 뿐만 아니라, 중 국 역사서 『한서(漢 書)』 · 『진서(晉書)』 · 『신당서(新唐書)』 · 『요사(遼史)』 등 을 탐독하면서 만주를 무대로 삼았던 여러 나라의 강역과 종족, 역사와 문화 · 지리 등 우리 민족의 고대 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를 통해 이상룡은 기자(箕子)의 한반도 동래설 을 강력히 부정하고, ‘단군국조론(檀君國祖論)’을 강 조하였다. 즉 국조 단군의 적전(嫡傳)이 단군-부여- 고구려-발해로 이어진다고 하였으며, 『만주지지』와 『신당서』 등에 근거하여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설 명하면서 식견이 좁은 우리나라 사가들이 민족 고토 의 강역을 축소시켜 버렸다고 개탄하였다. 또한 그 는 신라가 22대 지증왕 때에 이르러서야 국호를 정 하고 왕을 칭하였다면, 마땅히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신라 순으로 나라가 세워졌다 봐야한다고 했 다. 더불어 신라의 영역을 압록강 넘어까지 확대 비 정하였는데, 이는 신라 중심의 역사 해석을 지양하 고 고구려 중심으로 고대사를 인식한 것이면서, 신 라의 영역을 만주로 확대한 것은 다른 민족주의 사 가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시각이다. 이원태의 『배달족강역형세도』 표지 이상룡의 만주 망명일기인 「서사록」(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이상룡의 순국지인 중국 길림성 서란시 소과전자촌 원경(필자 제공) 이상룡의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 단체 한족회 활동 보도 기사(『신한 민보』 191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