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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5년 7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인식과 독립운동’ 이상룡의 삶과 독립운동 이상룡은 경북 안동시 낙동강변에 자리하고 있 는 임청각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상희(象羲)였으며, 1911년 만주(중국 동북지방)로 망명하여서는 이름 을 ‘이상룡’으로 고쳐 불렀다. 또 계원(啓元 · 啓源)으 로 불리기도 하였고, 호는 석주(石洲)이다. 그는 당 시 대부분의 유림들이 그랬던 것처럼 의병항쟁에 참 가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09년에 는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만들어 백성을 시민으로 변 화시키는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다가 1910 년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백번 꺾여도 좌절하지 않을 뜻을 품고 만주로 옮겨가 독립운동을 펴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망 명하였다. 만주 벌판, 그곳에서 이상룡은 독립군 기지건설을 위해 경학사 · 부민단 · 한족회 · 서로군정서 등 서간도 독립군 최고 지도자로 활약하였고, 1925년에는 대 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반인 초대 국무령(國務領)에 취 임하였다. 이는 곧 1920년대 중반 한국독립운동계 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권능과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 다. 하지만 분열된 민족전선을 통합하려는 그의 노 력은 좌절되었으며, 1932년 5월 중국 길림성 서란 현 (舒蘭縣, 현재는 서란시)에서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 는 자신의 유해를 고국으로 반장(返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한민족 고대사 인식 이상룡은 역사가의 임무가 국가의 체통을 높이 고 국민의 올바른 정신을 함양하는 데 있다고 보고,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1910년 겨울 『국사(國史)』를 썼으며, 1913년에는 『대동역사(大東歷史)』를 저술하였는데, 두 책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대동역사』가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교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룡의 역사 인식은 문집인 『석주유고 (石洲遺稿)』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그는 만주 망명을 결심하고, 망명길에 오르면서 쉼 없이 만주와 우리나라 고대사를 연구하였다. 그 내 용이 1911년 망명 일기인 「서사록(西徙錄)」에 담 겨있는데, 만주와 우리나라 지도를 사서 본다거나, 『만주지리지(滿州地理誌)』 · 『만주지지(滿州地誌)』 등 이상룡이 태어난 안동 임청각(臨淸閣, 보물 제182호, 안동시 제공)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 재직 시의 이상룡 (독립기념관 제공) 류인식(1865~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