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page

46 2025년 6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의병과 의병정신의 재조명’ 두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을 앞두고 일 제는 본국으로부터 제12여단을 긴급 증파하여 대구 에 여단본부를 두고 남부수비관구를 보강하였다. 이 는 군대해산 이후 예상되는 해산군인들의 저항과 점 증하는 의병들의 항전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후 해산군인들이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이들의 항일투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가자 같은 해 10월 초 일본은 기병 1개연대(4개 중대로 편성)를 추가 파견하고, 강릉과 인천에 수뢰정(水雷艇)을 파 견하여 의병 진압 병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일본군 제12여단은 제47연대와 제14연대로 구성 되었는데, 이들은 한반도 남부지역인 경기, 강원, 충 청, 경상, 전라지역의 의병세력을 토벌하는 임 무를 수행하였다. 제47연대는 대전에 연대본부를 두고 주 로 경기, 강원, 충청의 의병부대에 대한 토벌작전에 동원되었고, 대구에 연대본부를 둔 제14연대는 경상 도와 전라도 지역의 ‘의병토벌’에 전념하였다. 제12 여단은 처음에는 대전에 여단본부를 설치했으나, 경 기 강원 충청지역의 의병세력이 일본군의 토벌을 피 해 경상도와 전라도 남부지역으로 이동하자 여단본 부를 대구로 이전하였다. 일본군 제12여단은 1909년 6월까지 한반도 남부 수비관구 지역의 의병탄압 임무를 마치고, 보병 2개 연대로 구성된 한국 임시파견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새로 파견된 한국 임시파견대의 주요 임무가 바로 ‘남한대토벌작전’이었다. 호남지역에서의 의병항쟁 연합의진의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끝나고 전국 각지로 흩어진 의병부대는 유격투쟁을 전개하며 일 프랑스 일간지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에 실린 대한 제국군과 일본군의 남대문 전투 삽화(위키피디아 제공) 양회일 · 임창모 · 안규홍(일명 안계홍) 등 의병대들의 자취인 전남 화 순의 쌍산 항일의병 유적(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