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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택 열사 발자취 이곳은 4.19민주혁명에 앞장섰던 임기택(1936~1960)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자리이다. 임열사께서는 1936년 7월 27일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에서 아버지 임재석(본교 1회), 어머니 김계임씨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9년 7월 21일 본교를 졸업했으며(24회), 부석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다가 1954년 9월 8일 부석중학교에 편입학하여 1956년 3월 2일 졸업했다(1회). 1956년 4월 10일 서산농림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957년 8월 23일 육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다. 1960년 4월 19일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 일어난 4.19민주혁명에 동참했다. 임열사는 1960년 4월 26일 이기붕 부통렬 입 앞에서 투쟁하다가 총상을 입고 세프란스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사망하였다. 1960년 5월 초 부석면 취평리 시장에서 안만복 국회의원 주관으로 시민장으로 치른 후 부석면 대두리 선영에 모셨다. 1963년 9월 20일 서울시 성북구 수유동 산9-1 소재 국립4.19민주묘지 1묘역(21번)에 안장되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토대가 된 4.19민주혁명에 앞장섰다 희생된 임기택 열사의 민주, 자유, 정의 정신을 기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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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힌샘 주시경 1876.12..22~1914.7.27 국어운동가, 교육자. 본관은 상주, 호는 한힌샘, 황해도 봉산 출신 1894년 상경, 배재학당에 입학, 스스로 국어, 국문의 과학적 연구를 개척하기 시작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되자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국문동식회를 결성. 〈독립신문〉을 한국 최초로 한글전용, 한글 띄어쓰기, 쉬운 말 쓰기의 방법으로 제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여러 강습소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보급하는데 전념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기게 되자,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에 국어문법을 확립, 보급해야 함을 절감하고 국어국문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연구결과를 책으로 발간 1907년 어윤적, 이능화와 함께 학부의 국문연구소 위원이 되었고 국권피탈 직후 조선광문회에 가입, 〈훈몽자회〉 등 국어관계 고전을 교정하여 간행하고 〈말모이〉의 편찬을 담당 1914년 〈말의 소리〉를 저술, 간행하여 국어음운학의 과학적 기초를 확립, 전 생애를 한글의 문법과 맞춤법의 과학적 연구에 바쳤으며, 많은 제자를 육성, 조선어연구회를 창설 * 저서 : 〈주시경유고〉, 〈국어문법〉 * 주시경 선생 묘소: 서울시 동작구 사당2동 '국립현충원 국가유공자2묘역' 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