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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 서재필 생가. 독립운동가, 개혁가, 언론인, 의료인으로서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는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64년 1월 7일 외가인 이곳에서 부친 달성서씨 광언(光彦)공과 모친 성주이씨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의 어머니는 행낭 터에서 자식을 낳아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일념 으로 4남 1녀를 이곳 친정에서 낳았는데 선생이 태어나던 날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니 경사가 겹쳤다하여 어려서는 선생의 이름을 쌍경(雙慶)이라 불렀다. 7살까지 성장하여 기초학문을 닦았던 이곳은 선생의 외증조부 이유원(李有源) 공이 터를 잡았으며, 외조부 이기대(李箕大)공은 3천여 권의 장서를 구비하고 가은당(可隱堂), 일감헌(一監軒), 천상재(川上齋)의 3학당을 운영하였는데 유명한 학자들이 왕래하며 학문을 논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기대. 이지용(李志容), 이교문(李敎文), 이일(李鎰) 공의 장자로 이어진 연4대 문집이 있어 "가천세고(可川世稿)"라는 책명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선생의 외종형인 이교문(李敎文), 조카 이일 공은 부자간에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 의진에 가담하여 군량을 조달 하는 등 구국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6.25 전쟁 때 60여 호의 마을이 모두 소각되면서 선생이 출생하고 자랐던 생가도 소실되었으나 2003년 중요한 건물들을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