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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할 수 없으며 나라가 부서지고 이 한 목숨 죽는다해도 祖國에 대한 義理는 흔들리지 않을 것> 이는 저들 앞에 써 던진 詩句로서 그 즈음에 널리 傳誦되었던 것이다. 1917년 6월에 光州警察에 拘引 되어 간 先生은 그 사흘 때 되던 날 意識이 끊어진 몸으로 가마에 실려서 돌아와 그 길로 운명하였다. 亡國의 恨을 가슴에 품은 채 六十七세를 一期로 숨을 거두신 것이다. (安淸洞栗里田舍) 운명 한달 전에 아들 日圭에게 「마을 앞 飛龍臺 위에 朝鮮 三千里를 뜻하는 三層 石臺를 세우고 싶다-는 분부가 있었다.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내 祖國 三千里 강토가 外敵에게 짖밟혀 一朝에 生地獄이 되고 말았으나 오직 나라를 求하고 獨立을 되찾을 우리의 愛國精神 만은 저 바윗돌 처럼 굳세고 단단하고 變함이 없이 지켜 나가야한다는 깊고 깊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先生의 遺志에 따라 門人 여려분과 아들 日圭및 親知들이 힘을 모아 1920년 10월에 風天臺가 竣工되었다. 그 規模와 構造 臺名과 刻字등은 모두 先生의 분부에 따랐음은 勿論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