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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신채호의 한국사 인식과 민족해방운동  43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여러 대학의 강사와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 주 의연구소 책임연구원 및 소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아나키즘 – 사상펀』(지식산업사, 2001), 『신채호 다시 읽기』(돌베개, 2013), 『한국의 아나키즘 - 운 동 편』(지식산업사, 2015), 『한국의 아나키즘 – 인물편』(지식산업사, 2020) 등이 있다. 필자 이호룡 키스트 린빙원[林炳文]으로 하여금 수만 원의 외국 환을 위조하여 우체국에 저축케 한 뒤, 중국 · 관동(關 東州) · 한국 · 타이완 · 일본 등지에서 현금으로 인출한 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계획은 중도에 발각 되고 말았다. 신채호는 1928년 5월 8일 타이완 지룽 [基隆]우편국에서 예금을 현금으로 인출하려다가, 지 룽경찰서 형사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체 포된 사람은 신채호를 포함하여 이필현, 이종원, 린 빙원, 양지칭(楊吉慶, 중국인) 등 5명이었다. 신채호 는 5월 말에 다롄(大連)으로 호송되어 4차례의 공판 을 거쳐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신채호는 감옥에서도 아나키즘을 계속 연구하였 다. 1936년에 들어서면서 민족통일전선에 대한 기 존의 관점을 바꾸어 민족주의자 · 공산주의자와 연합 을 주장하는 민족전선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민족 전선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한국 아나키 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1936년  2월 21일 뤼순(旅順)감옥에서 뇌일혈로 옥사하였다.  판결문 1통, 인장 1개, 수첩 2권, 서한 10여 통, 중국  돈 얼마, 그리고 『세계 대사상 전집』(크로포트킨  편) 을 비롯한 서적 몇 권 등이 신채호의 유품이었다. 민족주의자라기 보다는 아나키스트 신채호는 계몽사상가에서 민족주의자로, 거기에 서 다시 아나키스트로 사상적 변신을 거듭하였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일제의  식민지 권력이었고, 모든 사회변혁운동은 바로 일제 의 식민지 권력의 억압에서 비롯되었다. 사회변혁 을 추구하던 사람은 모두 민족해방운동가로서 출발 하였으며, 일제가 붕괴되지 않는 한 민족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나 아나키 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민족해 방을 주장하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민족주의자로 규 정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신채호를 더 이상 민족주 의의 틀 내에 가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채호를 아 나키스트로 규정할 때 우리나라 근대 사상계에서 신 채호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