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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25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조국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을 다시 본다’ 와이지방총회, 시베리아지방총회, 만주지방총회가 있었다. 그리고 멕시코에도 지방회를 설치하는 등 해외 한인의 최고기관이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하기 전에 국내를 탈 출하여 중국과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1년 가량을 만 주에서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리고 도산은 유럽을 거쳐 영국 글래스고에서 칼레 도니아호를 타고 1911년 9월 3일 미국 뉴욕항 에 입 항했다. 미국에 돌아온 도산은 1913년 5월 13일 샌 프란시스코에서 26명이 참석하여 흥사단을 창단하 였다. 흥사단은 민족 독립의 인적·물적 기초를 마련 하고 그것을 통해 독립운동과 혁명운동을 전개하며, 궁극적으로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여 독립국 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안창호는 1915년 4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에 선출되었다. 이로써, 도산은 미주 한인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국외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로서 역 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박 용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6개월 가량 하와이 로 가서 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1917 년 멕시코 동포들의 초빙을 받아 1918년 8월까지 멕 시코 전역을 순회하였다. 도산은 멕시코 순행을 통 해 한인사회를 안정시키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구축 하였다. 평양 대성학교 대판(代辦) 교장  안창호 명함 안창호가 뉴욕항으로 들어올 당시 미국 이민국이 기 록한 문서(Ellis Island Record) 안창호가 멕시코 방문 당시 찍은 사진(H.  F.  Schlattman Foto) 흥사단 제3회 연례대회(1915). 도산 가족이 살았던 흥사단소에서  찍은 것이다(첫줄 가운데 안창호, 오른쪽 끝 이혜련과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