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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25년 7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인식과 독립운동’ 분배하려는 곧 ‘인육분장소(人肉分臟所)’로 묘사하면 서, 정부를 파괴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가 일제 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서 건설하고자 했던 사회 는 ‘무산 계급의 혈액을 착취하는 강도’에 불과한 자 본가계급을 타도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아나키스트사회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족통치 · 특권계급 · 경제약탈제도 · 사회적 불평 균 · 노예적 문화사상 등을 파괴하고자 했다. 아나키즘 실천 신채호는 아나키즘을 선전하고 실천할 방도를 모 색하기 시작했다. 테러활동을 주로 하는 다물단(多 勿團)의 선언을 작성하고,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이란 논문의 세례를 받을 것을 호소하기도 하 였다. 1927년 9월 베이징에서 중국인 슈지안[黍健] 의 발의로 6국 대표자 1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무 정부주의동방연맹 창립대회가 개최되자, 준비모임 에도 참가했던 그는 이필현과 함께 한국 아나키스트 대표로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각각 자국으로 돌아 가 연락을 하여 목적을 달성할 것과 본부를 상하이 에 설치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신채호는 무정부주의동방연맹의 결정을 실천에 옮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1928년 4월 톈진(天津) 에서 한국인 아나키스트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 는 신채호가 작성한 선언문을 채택하는 한편, 폭탄 과 총기를 제조하여 각국으로 보내 대관 암살과 대 건물 파괴를 도모하고, 선전기관을 설치하여 선전문 을 세계 각국에 배부 · 발송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사업에 소요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채호 는 외국환을 위조하기로 하였다. 타이완[臺灣] 아나 신채호 등을 체포한 사실을 보도한 타이완 신문 신채호 사망 보도 『동아일보』 기사(1936.2.23, 독립기념관 제공) 뤼순감옥에 수감된 신채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