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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독립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도산 안창호 41 「이력서」에 출생일을 “건국 기원 4211년 11월 9일”이라 고 하였다. 서기로는 1878 년 11월 9일이다. 출생지는 한국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 면(草里面) 칠리(七里) 봉상 도(鳳翔島)이다. ‘봉상도’는 우리말로 ‘도롱섬’이라고 불 렀다. 아버지는 도산이 세 살에 별세하였고, 할아버지 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안창호는 일곱 살 때 평양 으로 이주하여 살았고, 14세 부터 16세까지 도롱섬과 강서군 동진면 심정리 한문 서당에서 배우고 또 농사도 지었다. 16세 때 서울로 와서 근대적 학문을 배우다가, 24세에 미국 유학을 왔다. 미국 유학을 왔으나 미주 한인들의 절제 없는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여, 1903년 친 목회를 결성하였다. 한인들의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친목회를 통해, 생활개선 운동을 전개했다. 그 가 손수 화장실을 청소하고, 정원을 가꾸었다. 실천 을 통해 미주한인들을 감화시켰던 것이다. 안창호는 동지들과 함께 1905년 4월 샌프란시스 코에서 한인들의 상호부조 국권회복을 위해 공립협 회를 조직하였다. 공립협회는 북미 각지와 러시아 연해주에도 지방회를 설치하는 등 미주지역 독립운 동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국 권을 침탈당하면서 망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망해가 는 나라를 앉아서 볼 수가 없었던 도산은 국권을 회 복시키려는 포부를 가지고 1907년 국내에 들 어왔 다. 도산이 국내에 들어가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 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제국의 국권 이 일제에 의해 점점 침탈당하는 상황이었다. 나라 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1910년 봄 다시 국 내를 떠나 해외로 망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산 은 국외에 독립운동기지를 세우기 위해 러시아 연해 주와 만주(중국 동북지방)로 갔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활동 미주에서는 1909년 2월 북미의 공립협회와 하와 이의 한인합성협회와 통합하여 미주 최대의 기관인 ‘국민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2월 북미의 대동보국회까지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가 되었다. 대한인국민회는 무형의 정부로서 ‘중앙총회’를 설치 하여 국외 한인을 대표하는 최고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국민회 산하에는 북미지방총회, 하 리버사이드 오렌지농장에서 일하는 안창호 (이상 필자 제공) San Francisco Chronicle (San Francisco, California) · Sun, Dec 7, 1902 · Page 11 https://www.newspapers.com/image/27326300 Downloaded on Jan 12, 2022 Copyright © 2022 Newspapers.com. All Rights Reserved. 『샌프란시스코 클로니컬』 1902년 12월 7일 자에 실린, 안창호와 이혜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