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page
Special Theme • 신채호의 한국사 인식과 민족해방운동 39 朝新聞)』 · 『대양보(大洋報)』 · 『권업신문(勸業新聞)』 등 의 지면을 통해 재노령(在露領) 한국인들의 민족의식 을 고취하였다. 1913년에 신규식의 초청으로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서 동제사에 가입하여 활동하 다가, 1914년에 서간도로 가서 동창학교에서 학생 들에게 국사를 가르쳤다. 1915년에 베이징(北京)으 로 간 이후 『꿈하늘』을 집필하는 등 문필활동을 계속 하였다. 한편, 신채호는 중국에서도 한국역사 연구를 계속 하였다. 그는 남만주 일대와 백두산을 답사하고 중국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 측 자료 등을 열람하는 등 중국에 있는 한국사 관련 사료들을 섭렵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18년 무렵부터 통 사 집필에 착수하여, 「조선사통론」, 「문화편」, 「사 상변천편」, 「강역고(疆域考)」, 「인물고」, 부록 등 을 집필하였다. 이들 원고는 『조선사』, 「조선상고 문화사」 등의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문화사」에서 역사연구 방 법으로 유증(類證), 호증(互證), 추증(追證), 반증, 변증의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태고사를 단군시 대, 단군조의 업적과 공덕, 아사달왕조 시대와 단 군 이후의 분열과 식민지의 성쇠, 진한(秦漢)의 전 성과 대외전쟁, 조선 열국 분쟁의 초기 등의 5편 으로 나누어 서술하면서, 태고사의 흐름을 조선 족 즉 부여족의 국가 활동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설명하는 한편, 한사군의 위치를 압록강 이북의 랴오둥[遼東] · 랴오시[遼西] 지역으로 비정하고, 남 북 양 낙랑설을 제기하였다. 신채호에게 역사 연구란 민족해방운동의 한 방 편이었다. 즉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복원하기 위 해서가 아니라, 역사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자긍심 을 높여 민족해방운동에 동참하게 할 목적으로 역사 를 연구한 것이다. 아나키즘 수용 1905년 일본인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의 『장광 설(長廣舌)』을 통해 아나키즘을 접하고 거기에 공명 했던 신채호는 1913년 상하이로 간 이후 중국 아나 키스트 류스푸[劉師復]의 논설을 탐독했지만, 아나키 신채호의 조선상고문화사 제1회 연재분 (조선일보, 1931.10.15) 신채호 등 39인이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 (1919.2~3,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