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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팔균(申八均, 1882~1924) 건국훈장 독립장(1963)
1902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 신팔균 선생은 대한제국 육군 정위(正尉)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자 낙향하여 민족학교인 보명학교(현 진천군 이월초등학교)를 설립하고,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펼쳤다. 1910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였으며, 사령관으로서 무장항일투쟁에 앞장섰다. 별호를 동천(東川)이라 하여 이청천(李靑天)·김경천(金擎天)과 함께 독립군 인재의 삼천(三天)으로 불리던 지휘관이었던 선생은 이도구(二道溝) 산악지대에서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중 일제의 사주를 받은 마적 300여 명의 습격을 받아 결전하던중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