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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5년 7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인식과 독립운동’ 들을 이끌어 조국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 문이다. 1900년대 말에 이르러 민족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면서 신채호는 점차 영웅주의를 극복하고 인 민주권의 공화주의로 나아갔다. 이후 그는 영웅을 찾기보다는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데 주력하였 다. 그는 중세 사학의 잘못을 바로잡고 근대 역사학 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집필 하고, 이를 통해 한국 고대사 연구의 방향과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는 기존의 고대사 인식체계를 부정하 고, 단군의 전통이 부여 · 고구려로 계승되는 것으로 고대사의 흐름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발해(渤海)를 한국 민족의 역사에 포함시켜 발해 · 신라 양국시대를 설정하였다. 나아가 정체성사관과 순환사관을 부정 하고, 한국 민족의 역사도 발전해 왔음을 밝혔다. 그 는 발전사관에 입각해서 한국사를 태고사(단군 건국 ~삼왕조 분쟁 전), 상세사(삼왕조 분쟁~발해 멸망), 중세사(발해 멸망~만주 입구[入寇]), 근세사(만주 입 구~프랑스 도적 격퇴), 최근세사(프랑스 도적 격 퇴~ 금일)의 5시기로 구분하였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에 집중하였는데, 그것은 우 리 민족이 문화민족으로서의 유구한 전통과, 대외 관계에서 굳건한 자주독립성을 견지하고 있었던 시 기는 고대였으며, 김부식 이후로는 사대주의로 찌든 역사일 뿐이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고대사 복원을 통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중세적 잔재를 비 판 · 극복 · 개혁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민족적 전통 에 근거하여 자생적인 근대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민족해방운동 참가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점이 목전에 닥치자, 신채 호는 무장투쟁론을 제기하고, 해외에서 민족의 독 립을 도모하기 위해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0년 4월 칭다오[靑島]회의에 참가한 뒤 연해주로 가서 광복회를 조직하고, 『해조신문(海 중국에서 활동할 때의 신채호 (이상 독립기념관 제공) 신채호의 생가(복원, 대전시 중구 소재) 신채호가 번역저술한 전기류 역 사소설 『이태리건국삼걸전(伊太 利建國三傑傳)』(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