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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25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조국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을 다시 본다’ 자 수십 명이 현장에서 희생되었고, 유관순의 부모 역시 그 자리에서 총탄에 쓰러졌다. 부모의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체포된 그녀는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3년형으로 감형되어 경성(현재 서울) 서 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열일곱의 소녀가 맞닥뜨 린 현실은 가혹한 고문과 억압의 연 속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육체적 고 통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감옥 안 에서 동료 수감자들을 독려하며 독 립의 의지를 불태웠고, 여러 차례 옥중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1920년 3월, 옥중에서 다시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료들과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이 사건은 형무소 당국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그녀 는 독방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견 뎌야 했다. 손톱이 뽑히고 갈비뼈 가 부러지는 등 참혹한 고통은 상상 하기 어려웠다. 이어진 폭행과 의 료 방치, 식사 박탈로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갔으며, 결국 1920년 9월 28일, 불과 18세의 나이로 옥중에 서 생을 마감했다. 광복 80주년, 기억과 계승, 성찰과 실천의 계기돼야 그녀의 시신은 순국 직후 서대문 형무소 측에서 가족에게 온전히 인 도되지 못했고, 장례조차 제대로 치 르지 못했다. 이후 이태원공원묘지에 매장되었다가, 현재는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합장묘소 (묘소번호 100036)가 조성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그녀의 넋을 기리며 기억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죽음마저 지워지려 했던 그녀의 존재는 민족의 기억 속에서 더욱 선명히 빛나고 있다. 이화학당 시절의 유관순 열사(뒷줄 오른쪽 끝,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감옥 수형자 기록표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