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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25년 6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의병과 의병정신의 재조명’ 은 신문이었다. 당시 언론기관은 일제의 엄격한 검 열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선봉에 나서서 국민여론을 환기시켰다. 특히 장지 연이 『황성신문』에 조약 늑결의 전말을 상세히 보도 하고,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유 명한 논설을 실었다. 장지연은 이 논설에서 을사늑 약의 망국적 성격을 언급하면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매국 대신들을 “개 돼지보다 못하다”고 맹렬히 논박 하고, “통재통재라 동포아 동포아”라고 하여 절망적 탄식으로 글을 마침으로써 이 조약으로 인해 실질적 국망(國亡)을 맞이한 현실을 개탄하였다. 『황성신문』 외에도 『제국신문』 · 『대한매일신보』 등 도 조약 늑결의 실상과 각지 반대여론을 상세히 보 도하고 그 무효화를 주장함으로써 거국적 항쟁을 선 도하였다. 특히 영국인 베델(E. T. Bethell)이 경영하 던 『대한매일신보』는 고종황제가 러시아·미국·독일· 프랑스 등 열강의 원수 앞으로 보낸 서한을 게재하 여 을사늑약을 결코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포 하였다. 을사늑약에 반대한 항일투쟁은 분개한 전· 현직 관료들과 유생들이 주도하였고, 이들은 상소를 올려 조약 무효화와 5적 처단을 주창하고 나섰다. 뒷날 헤이그 특사파견시 정사(正使)가 된 이상설 (李相卨)은 고종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조약을 파기하 고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다. 조약에는 5대신 만이 서명하였을 뿐, 아직 황제의 인준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가 이를 강력히 거부하면 무효 화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조야에 중망이 높던 면 암 최익현을 비롯하여 면우 곽종석·간재 전우·한계 이승희 등 당대의 거유들이 연일 상소를 올리며 항 거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최익현의 상소는 매우 강 경하였고, 그는 1906년 봄에 「창의토적소(倡義討賊 疏)」를 올리며 노구를 이끌고 구국을 위한 거의(擧義) 항쟁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상소항쟁과 순국투쟁 뿐만 아니라, 일제와 결탁 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데 찬동·협조한 을사5적 등 매국관료를 성토·처단하려던 의열투쟁도 연이어 면암 최익현의 초상화. 조선 말기 어진화가로 유명한 석지 채용신이 그렸다(뉴스1 제공).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켰던 전북 태인의 무성서원(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