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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후 조국광복을 위한 운동이 방방곡곡에서 일어나 의거로서 항일항 奮不顧身(분불고신) 지사는 혜아릴 수 없는데 서정기선생 또한 그 한사람이시다. 선생은 父祖(부조)의 유훈을 계승하여 효도로서 부모를 섬기고 가업을 수성하니 향리가 推重(추중)하였다. 기미독립운동후 우국지사가 悲憤慷慨(비분강개)하여 일어설때 선생께서는 서울에서 黑旗聯盟秘密結社(흑기연맹비밀결사)에 가맹하니 그 나이 28세였다. 불행히도 왜경에 체포되어 5년의 옥고를 치루고 爾來(이래)眞正(진정)한 자유평등주의를 주장하여 무정부주의로서 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문예운동사를 조직하여 국민의 계몽에 힘쓰다가 기사년에 또 왜경에 피체되어 5년간의 옥고를 재차 치루게 되었다. 그후 만주 상해 등지에서 광복운동에 헌신하다가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여 꿈에도 그리든 조국광복을 보고 경인년에 별세하니 향년 53세였으며 나라에서 선생의 공적을 높이 찬양하여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선생의 성은 서씨로 대구인이며 軍器寺少尹(군기소윤) 閈之(한지) 후예로 ...중략...7남매의 맏이시고 고종35년 무술4월30일에 나서 경인5월19일에 졸하니 이류면 완로동 선영하에 안장하였다. ...중략...선생은 어려서 부터 배움에 있어 재조가 남달랐으나 세상일이 날로 변하여가매 나라 잃은 슲음으로 비분하여 많은 세월을 이국에서 독립운동으로 보냈으니 참으로 애국지사이시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