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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25년 7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인식과 독립운동’ 상세히 담았다. 『한국 통사』가 아픔과 반성 의 기록이었다면, 『한 국독립운동지혈사』 는 민족의 생생한 투쟁사였다. 특히 박은식은 3·1운 동을 통해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전국적 만세 시위와 그에 대한 일제의 잔 혹한 탄압, 해외 각지에서의 독립운동을 상세히 서 술하였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또한 박은식의 역사 인 식의 성숙을 보여준다. 『한국통사』에서는 동학농민 운동과 의병항쟁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한국독 립운동지혈사』에서는 이를 독립운동의 도화선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는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의병 전쟁, 3·1운동을 모두 민족 저항사의 흐름 속에서 위 치 지우며, 이를 통해 독립운동의 정당성과 계승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난(亂)’으로 표현하였던 사건들을 ‘혁명’으로 격상시켰고, 민중의 힘을 역사 의 동력으로 인정하였다.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단순한 과 거의 서술이 아니라, 국혼을 지키고 미래 독립을 위 한 정신적 역량을 결집하려는 시대적 사명이 깃든 역사서이다. 박은식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도 망국의 슬픔을 민족 각성의 계기로 전환시켰으며, 독립운동 의 정당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민족의 단합과 정신 적 기반을 확보하고자 했다. 오늘날 두 저서는 단지 항일 저항의 기록이 아닌, 민족의 자긍심과 독립의 원동력을 품은 정신적 유산으로서 다시금 읽혀야 할 고전이다. 민족의 스승, 사학자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박은식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오 직 한 가지, 조국 독립을 위해 지식과 열정을 바친 위 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그는 한 사람의 역사 학자를 넘어서 일제강점기의 정치적 공백 속에서 대 한민국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으로서 분열된 독립 운동 노선을 수습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지도자 였다. 박은식은 독립운동의 방향이 이념과 계파에 따라 분열되었던 시기, 통합의 상징으로 등장하였다. 그 는 1925년 이승만 대통령이 탄핵된 뒤, 혼란에 빠 진 상해 임시정부를 이끌기 위해 임시대통령으로 선 임시정부의 3·1독립선언 2주년 기념식(상해, 1921.3.1) 박은식 서거 사실을 보도한 「도백암 박은식선생(悼白巖朴殷植先生)」 기 사(『독립신문』1925.11.11, 이상 독 립기념관 제공) 중국 신문에 실린 박은식 서거 보도 기사(국가보 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