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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박은식의 역사 인식과 독립운동  33 교사(施敎師) 윤세복의 집에 기거하였다.  윤세복의 집에 머물면서 그는 『천개소문 전』·『명림답부전』·『발해태조건국지』·『몽 배금태조』·『대동고대사론』·『단조사고』· 『동명성왕실기』등을 집필하여 고대사 영 웅들의 행적을 부각시켰다. 이 책들은 대 종교에서 운영하던 동창학교의 교재로  사용됨으로써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되 살리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의 발간과 그 의의 박은식은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역사서를 통해 국민들에게 민족혼을 일 깨우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1915년 상 하이에서 『한국통사』 출간했는데 이  책은 대원군 집정 시기인 1864년부터  1911년 105인 사건까지의 한국 근대 사를 다루었다. 그는 이 책에서 조선의  몰락을 일본의 침략만이 아닌 내부 부 패와 무능함, 시대착오적인 쇄국정책,  실학의 배척, 교육의 부재, 외척 정치의  폐해 등 내적 요인까지 엄정하게 분석하였다.  그는 나라가 망한 현실 앞에서 ‘국혼(國魂)’의 중요 성을 강조하였다. 국혼이란 국어, 국문, 국사, 국학  등 정신적 유산을 의미하며, ‘국백(國魄)’은 국가의  물질적 기반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그는 “나 라를 멸할 수는 있어도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하 며, 역사는 곧 민족의 정신이라는 신념을 갖고 『한국 통사』를 집필하였다. 조선총독부는 『한국통사(韓國 痛史)』의 국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이를 금서 로  지정하였으며, 이후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해 왜곡된  『조선사』를 발간함으로써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 려 했다. 박은식은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독립운동지 혈사』를 집필하였다. 이 책은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까지의 항일투쟁사를 망라한 혈투의 기록으 로, 독립운동의 구체적 사례들과 순국자들의 희생을  1920년 12월 28일 상해교민단이 베푼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대통령 이승만  환영회에 참석한 박은식(앞줄 오른쪽 세번째). 이날 참석한 단상의 인물들은  앞줄 왼쪽부터 손정도·이동녕·이시영·이동휘·이승만(가운데 화환 두른이)·안창 호·박은식·신규식·장붕이다(독립기념관 제공). 박은식의 저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표지(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