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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 집터
이 장소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종일 1858~1925 선생이 거주했던 곳이다.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출신인 선생은 1898년 최초의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하였으며, 대한황성신문 사장으로도 활동했다. 1906년 천도교 지도자 의암 손병희 선생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였으며, 손병희선생의 지도하에 준비 중인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선생이 사장으로 있던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 이후 3월 1일 인사동 태화관에서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을 한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도 제2의 3·1운동인 자주 독립선언운동을 주도하였고 한국독립비사를 집필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