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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25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조국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을 다시 본다’ 1910년 3월 26일 사형집행일. 뤼순의 하늘은 추 적추적 봄비를 뿌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아침 식사 를 마친 안중근은 고향에서 보내온 흰 한복 수의로 갈아입었다. 안중근은 마지막 유언을 묻는 집행관에 게 “나의 거사는 오직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으므 로 바라건대 이 자리에 있는 일본인들도 나의 뜻을 이해하고 피차의 구별 없이 합심하여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 데 힘쓰기를 기원하오”라고 말하고 의연하게 교수대에 올랐다. 오전 10시 15분. 31세의 짧은 삶 을 오로지 민족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살아온 민족 의 영웅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안중근의 시신은 두 동생의 필사적인 항의에도 불 구하고 가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일본에 의해 비밀 리 에 안장되었다. 가족에게 인도되면 안중근의 묘소 가 독립운동의 성지(聖地)가 될 것이라는 일제의 우 려 때문이었다. 찾지 못한 안중근의 유해는 조국으 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이 순국한 지 115 년, 광복 80년을 맞았음에도 아직 우리는 의사(義士) 의 유언(遺言)을 받들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순국 이후 안중근 가문은 대부분 독립운동 에 뛰어들어 동생 정근, 공근을 비롯해, 사촌 명근, 경근, 홍근, 어머니 조마리아, 작은아버지 안태순, 조 카 봉생, 춘생, 원생, 낙생, 미생 등 3대에 걸쳐 총 16 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하였다. ‘의사 안중근’이 보여준 살신성인의 자세는 강우 규, 김상옥,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등 많은 독립운 동가에게 계승되었다. 청년기에 청계동에서 안중근 집안과 인연을 맺었던 백범 김구는 안중근을 ‘한국 독립운동의 지주’로 받들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 에 맞서 한국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의 모습과 정신은 독립과 평화를 사랑하는 한 국인과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영원한 영웅으로 남아 있다. 빌렘 신부(앞줄 가운데)와 아우 정근·공근(왼쪽)의 안중근 면회 모 습(독립기념관 제공)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한국사학과에서 한국근대사를 공부했다. 화정박물관 학예연구실,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 부를 거쳐, 현재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다. 「러일전쟁 직후 동북아 정세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학예지』29, 육군박물관, 2022 ; 「한무영 기 증 청주한씨 팔고조도(八高祖圖)」,『생활문물연구』24, 국립민속박물관, 2009 등의 논문이 있다. 필자 이주화 ●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순국선열의 희생 위에 건립된 대한민국’이란 내용을 반영하기를 촉구합니다. ● 보상금은 서훈을 받은 분은 누구나 수혜일로부터 2대 보상을 받도록 개정을 촉구합니다. ● (사)대한민국순열유족회를 공법단체로 법제화할 것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