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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5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조국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을 다시 본다’ 였으나, 패전의 충격을 받은 교민 사회의 호응을 기 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1909년 2월 초 안중근은 엔치아(煙秋) 카리(下里) 에서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맺는다.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결의에 한 맹세였다. 안중근 을 비롯한 12명의 동지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자 의 왼손 약지 첫 마디를 잘라 그 피로 ‘대한독립(大韓 獨立)’이라 쓰고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 유지를 위 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단지동맹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와 엔치아를 오가 던 안중근은 그해 10월 대동공보사 주필 이강 (李剛)으로부터 한국 침 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 미(伊藤博文)가 하얼빈 에 온다는 소식을 듣는 다. 안중근은 10월 21일 동지 우덕순(禹德淳)과 함께 하얼빈을 향해 떠 난다. 중간에 유동하(劉 東夏)를 만나 도착한 하 얼빈에서 조도선(曺道 先)을 추가로 영입한 안 중근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우덕순과 조 도선을 채가구(蔡家溝) 역에서 대기토록 하고 자신은 홀로 하얼빈에 와서 거사를 준비한다.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경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플랫폼에 멈추고 마중 나온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쵸프 일행 과 회담 후 이토와 수행원이 일본 총영사의 안내를 받으며 기차에서 내렸다. 이토가 의장대를 사열하고 환영객들로부터 인사를 받던 순간 러시아 의장대 뒤 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안중근의 권총이 불을 뿜 었다. 가슴과 복부에 3발을 맞은 이토가 쓰러졌다. 이때가 오전 9시 30분. 저격 직후 안중근은 힘찬 목 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삼창하고 순순 히 체포되었다. 안중근의 총탄을 받은 이토는 주치 뤼순감옥의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곳(독립기념관 제공) 안중근이 집필하다 미완으로 그친 「동양평화론」의 앞 부분 안중근이 뤼순감옥에서 쓴  유묵 ‘국가안위 노심초사’(안 중근의사숭모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