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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5년 6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의병과 의병정신의 재조명’ 을 수 있을까? 우리 역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 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듬해 면암 최익현은 74세 의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모집한다. 대포로 중무장 한 일본을 의병으로 상대하는 일이 성공할 수 없음 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자 살을 감행한 목적은 그러지 않고서는 역사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절실함에 있었다. 면암은 일본의 패망을 분명하게 예견하였다. 하지 만 일본의 패망이 곧바로 대한의 광복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점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였던 것이다. 일본이 망해도 우리 민족이 사라진다면 국권을 회복 할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우리 는 이제 알게 되었다! 면암의 순국은 출발이 바로 우 리 민족이었다는 바로 그 사실 말이다. 면암은 일제의 간계를 바로 ‘역인종지계(易人種之 計)’라고 말했다. 우리 민족을 이제 이 세상에서 영원 히 없애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중국 민족도 아니고 일본민족과도 다른 우리 민족이 이제 는 더 이상 이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엄 청난 시대상황을 마주한 면암의 심정을 상상하면 오 싹한 전율이 흐르게 되고 만다. 이 엄중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면암의 순국이었다. 이제 필자는 민족과 조국을 나 누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우리 역사에서 나 라가 망한 경험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고구 려, 백제, 신라가 망했으며, 고려가 또한 망했었다. 하지만 과거의 망국은 왕조만 망한 것인데 비해, 당 시 면암이 목도한 것은 민족자체가 없어져버린다는 실로 역사상 초유의 경험이었다. 이제 필자는 조국보다 앞서 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면암의 순국을 통해 알게 되었다. 면암의 순국은 단 순한 군주에 대한 충성이나 왕조의 연장이 아니었 다.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서 면암은 먼저 고종임금 에게 순국할 것을 요구하였다. 왕조 국가에서 40여 년 이상을 받들어 온 임금에게 자살할 것을 요구하 는 면암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필자의 가슴은 먹먹해 질 따름이다. 하지만 고종은 이를 결행하지 못하였 다. 그러자 면암은 민족과 조국 앞에 목숨을 바친 것 이다. 나라는 멸해도 의병은 멸하지 않았기에 우리 는 조국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의병정신과 세계평화 우리 민족사에 독특하게 존재했던 의병항쟁은 우 리 민족이 개별적 민족주의에 대한 상징이었다. 하 지만 우리의 의병정신 속에는 ‘만국공법(萬國公法)’ 과 인류양심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평화사상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적 가치로서의 의(義)가 우리 민족을 중심으 로 주장되면서 한국민족주의의 본질을 이루었지만, 그것이 일단 세계 인류와 만나 더 큰 의리[大義]로 발 전할 때 그것은 인류공영의 평화윤리로 발전되어갔 다는 사실을 안중근 의사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안의사는 의병전쟁에 앞서 먼저 동양이 함께 공존 해야 할 ‘동양평화’를 강조하였고, 무력적 토벌보다 는 저 일본이 자신들의 죄과를 씻고 우리와 함께 의 로운 하나가 될 것을 요구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응징한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하얼빈 의거를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동양평화의전. 東洋平和義戰]’이라 칭했다. 이등박문이 주장하는 ‘동양평화’는 이웃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