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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공주 역사 인물 / 2020년 9월의 공주역사인물 - 동성왕 | 東城王 (미상~501)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동성왕(東城王, 미상~501)의 이름은 모대(牟大)이며, 제22대 문주왕(文周王)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로 태어나 담력이 뛰어나고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웅진 천도 이후 문주왕과 삼근왕의 재위기간이 만 2년이었던 것에 비해 동성왕이 23년 간 재위할 수 있었던 것은 혼란했던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국내 정세의 안정을 위해 동성왕은 금강 유역의 신진세력을 등용해 기존 귀족세력과의 균형을 도모했으며, 지방 곳곳에 중앙관리를 파견해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의 남진을 견제하고 백제의 옛 위상을 되찾기 위해 중국 남조의 남제 및 왜와의 외교를 강화하였으며, 신라와 혼인을 통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동성왕의 대.내외적 정책을 통해 백제는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고 국력을 회복하였으며, 회복된 국력은 무령왕으로 이어지는 백제 중흥기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왕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궁궐과 성벽을 중수하고 왕성 안에 임류각을 축조했으며, 제민천에 웅진교(지금의 대통교)를 가설해 백성들을 홍수로부터 구제하고 왕도를 확장시키는 등 오늘날과 같은 공주 원도심의 풍경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왕권 강화를 위한 대규모 토목사업과 거듭된 흉년으로 인해 민심은 점차 악화됐으며, 결국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사비성 서쪽 벌판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동성왕의 장례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왕릉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으며, 동성왕이 축조했다는 임류각은 1980년 공산성 발굴조사를 통해 1993년 복원되었다.
공주시는 혼란했던 웅진백제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해 무령왕으로 이어지는 백제 중흥기의 초석을 닦은 동성왕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2020년 9월의 역사인물로 '동성왕'을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