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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儂朴晉穆義士(남농 박진목의사) 한몸을 온전히 救國濟民의 大義앞에 바침은 비상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능히 할 수없는일이니 南儂 朴晉穆義士야 말로 그 절의에 헌신한 분이다 先生은 密城人이니 晋穆은 그 이름이요 字는 熙道며 雅號는 南儂이다. 壬午年 十二月十九日에 慶尚南道 宜寧郡 芝正面 杜谷 鄉第에서 나시니 천품이 英邁豪放하여 일찍이 鄕黨의 囑望을 한몸에 지니셨다. 先生은 芝正面長등으로 고향을 지키면서 庚戌國恥後의 부끄러움을 씻으려 死力을 다했으나 이미 國運이 기운뒤였다. 일이 뜻대로되지 아니하매 白山 安熙濟등 동지와 더불어 나라의 독립을 향한 큰뜻을 실행에 옮기니 이로부터 한평생에 寧日이 없었다. 己未年 三月에는 萬歲義舉에 가담 鄉里에서 鄭惠元동지등과 군민을 倡導하니 여러 고을이 모두 선생의 지휘에 따랐다/ 이후 倭勢의 날뜀을 피해 間島로 피신하니 祖國光復을 위해 겪은 異域風霜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亡命二十年만에 江原道 平康땅에 정착하였고 乙酉解放을 맞아 서울로 移住 다시 六·二五動亂을 당하여 부산에 피난중 그해 九月初八日 六十八歲를 一期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咸安趙氏 또한 國事에 몸을 바친 夫君을 대신하여 집안을 지키느라 갖은 苦楚를 겪었다. 先生 三眞日에 지아비를 따라 永眠하니 어찌 장렬하다 아니한가. 義士 돌아가신지 어느덧 반백년이나 墓道의 立石에 一代의 자취를 새삼 간추리는 것은 先生의 높은 뜻을 길이 紀念하고자 함이다. 風雨當年의 크나큰 感慨는 哲嗣承家의 志節로 살아 歲月토록 영원하리라 西紀一千九百九十三年 癸酉 五月五日 謹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