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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대간첩 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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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개요 1995년 10월 24일 14:40경 부여경찰서 상황실에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정각사 뒷산에 무장간첩 2명이 출현하였다는 신고가 접수도이었다. 부여경찰서 및 충청남도경찰청 지위관 이하 전 경찰관들은 평소 훈련으로 다져진 역량을 발휘하여 신속하게 부대를 출동하였고, 도주로 차단및 추격전을 전개하여 1명을 생포하고 군과의 합동작전으로 간첩 1명을 사살하는 등 전례없는 전과를 올리고 작전을 종료하였다. 특히, 이 대간첩 작전은 녹음이 우거진 산악지역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도주로의 완전한 차단 봉쇄, 경찰 군과의 유기적인 협력체제 유지 등 대규모 작전을 전개하여 민간인 피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작전에 동원된 인원은 경찰 8,650여명, 군병력 9,800여명, 예비군 12,700여 명이었으며 추격 작전 전개 중 안타깝게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경찰관 1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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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경로 및 행적 95.8.28 / 14:0 남포항 출발 95.9.2/20:30 공작선 환승 95.9.2/23:00 1시간 수영으로 해안도착 95.9.3/6~9:00 택시이용후 목포행 배 승선 95.9.3/13:00 목포함 도착 열차로 서대전역 도착 95.9.4~9.6 양양,양평,이천등 무인포스트및 안착보고 95.9 서울에서 생필품 구입 95.9.15~10.23 경기 성남시 단대리 장기투숙 95.10.24 고정간첩 접선위해 부여에 출현(생포및 사살) 무장간첩 김동식과 박광남은 '95년 8월 29일 북한 남포항에서 공작 모선을 타고 9월 2일 제주도 인근 해상을 시작으로 성산읍 온평리 해안, 목포등을 거쳐 격전지까지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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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 이상설 1870~1917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호는 부재, 충북 진천 출신. 1894년 식년문과에 급제, 성균관 교수 겸 관장 등을 거쳐 궁내부특진관, 합부협판, 법부협판, 의정부참찬 등을 지냄 1904년 일본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일본의 요구를 물리침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상고하고 자결을 기도 1906년 이동녕 등과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 서전서숙을 설립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최초의 독립운동기지라 할 수 있는 한흥동을 건설 1910년 국권피탈 뒤 유인석 등과 13도 의군을 편성하고 상소문을 올려 망명정부의 수립을 시도 1911년 권업회를 조직하고 〈권업보〉를 발행 1914년 이동휘, 이동녕 등과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에 선임 1915년 상하이 영국조계 안에 박은식 등과 신한청년단을 조직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