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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신현상선생 추모비. 1905년 2월 12일 이 곳 예산 용곡리에서 태어나신 일연 신현상선생은 유년기에 역사학자이신 권덕규 선생의 문하생으로 학문을 익히시고, 18세에 구국의 일념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민족지도자들이 설립한 상해 노동대학에서 수학하시면서 임정요원으로 계시는 동안 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애국독립운동 단체들의 독립운동자금의 필요성을 통감한 나머지 1930년 2월 일시 국내에 잠입하여 기지를 발휘 위조환증을 이용하여 예산과 천안의 호서은행에서 거액(당시 일화 58,000원)을 인출 북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셨다. 그리하여 자금의 일부로 무기를 구입 천진 일본영사관을 습격하려다 거사직전에 밀정의 고발로 체포되어 4년간의 옥고를 치르셨으며, 1945년 조국의 광복 후에는 김구 주석의 판공실장,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감찰위원장을 역임하셨다. 1949년에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검찰관으로서 민족정기를 훼손한 민족반역자를 엄단 민족정기 앙양에 헌신하셨으나, 1950년 6·25동란 당시 공산당에게 참화를 당하셨고, 그 유해를 찾지 못하여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지 여러분들과 후학들이 선생의 연고지인 용곡 산하에 추모비를 세워 생전의 유업을 위로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197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