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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 전우 초상 간재 전우(艮齋田愚, 1841~1922)는 한말의 큰 유학자이다. 전주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났으며, 문장을 잘 지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이이와 송시열의 학풍을 계승하며 새로운 성리학적 경지를 창안하여 최후의 유학자로 추앙받는다. 대한제국이 흔들리고 나라의 국운이 기울어지자 그는 나라는 망하더라도 도학(道學)을 일으켜야 궁극적으로 국권 회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마침내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공자의 뜻을 따라 왕등도, 군산도 등의 작은 섬을 옮겨 다니며 학문에 전념하다가 1912년 부안의 계화도에 정착하여 192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정통 유학을 가르치며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렀는데 그가 임종하였을 때 장례를 따르는 제자들로 계화도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계화면에는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계양사(간재선생유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