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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뫼 스승님은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중에 비밀 독서모임을 이끌며 항일 의지를 기르고 넓히었다. 열 아홉 살 이던 1937년 봄에 외솔 지은 우리말본 을 읽고 우리 말글 연구의 뜻을 더욱 굳건히 하였으며 일본 유학의 권유도 물리치고 졸업과 함께 외솔이 계신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일제의 압력으로 외솔이 교수 직에서 파직되자 고향으로 내려가 세계의 저명한 언어학 이론을 스스로 깨쳤다.
1947년 스물 아홉 살에 대학 교수가 되면서부터 연구와 저술 활동에 전심전력 하여 여러 부문에 걸쳐 깊은 이론을 담은 저서를 줄줄이 지어냄으로써 국어학의 크고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으며 한편으로는 훌륭한 후학을 많이 길러 냈다. 삼십여 년 한글학회 회장으로서 학회를 반석 위에 올렸고 우리 말글 운동의 굳건한 기둥이 되었다.
사모님은 알뜰히 집안 살림을 꾸렸을 뿐더러 자녀 교육에 남다른 관심과 정성을 쏟았다. 두 아들은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 교수가 되었고 두 딸은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사업가의 배우자가 되었다. 내외분 사이의 정분은 남달리 두터웠으며 사모님이 앞서 돌아가시자 스승님은 먼저 떠난 아내 백금석의 추억으로 쓴 '일곱 달 동안의 일기'라는 덧말을 붙인 시조집을 내어 안타까운 정분을 나누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