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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 백정기(鷗波 白貞基)의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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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과 10대 1896.1.19출생 ○ 이곳에서 수원 백씨 사순(일명 남일)과 파평윤씨 옥문 슬하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08(13세) ○ 창녕조씨 필락여사와 결혼 후 정읍군 영원면 은선리의 처가 인근으로 이주, 「영주정사」에서 수학 1910(15세) ○ 일본의 강제병합이 있자 「영주정사」 학동들과 망국제를 지냄 1914(19세) ○ 포학한 일본 순사를 구타한 사건으로 도피생활 중 전남 담양에 있는 「장흥의숙」에서 신학문 수학 ○ 20대 연보 1919(24세) ○ 3.1운동 이후 중국 봉천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 홍범도 장군 부대와 연락 활동 1920(25~27세) ○서울,일본,중국을 오가며 일제의 정황 탐색과 사회주의 사상 탐구 1923(28세) ○ 일왕 암살 계획이 관동대지진으로 실패하여 귀국 ○ 북경에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결성, 기관지 「정의공보」 발간 ○ 9월말 이윤규, 이정규, 정화암 등과 함께 영국인 주물공장에서 견습공으로 폭탄제조 기술을 배움 ○ 30대 연보 1925(30세) ○ 상해 5.30 총파업 때 이정규와 함께 「화남연맹」및 「공단연합회」를 연결시켜 투쟁 1926(31세) ○ 상해의 백범 김구 집에서 운남군관학교 졸업, 크로포트킨이 「법륙과 강권」 「무정부주의자의 도덕」 등 10여편의 소책자 발간에 참여 1927(32세) ○ 백범 김구의 알선으로 허영추, 진수방과 함께 전차회사에 취직하여 동지들을 부양 ○ 우당 이회영과 연락을 취하며 상해, 복권, 광동 등 중국 각지 동지들의 중심 거점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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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33세) ○ 남경에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에 조선 대표로 참가하여 기관지 「동방」 편집위원으로 활동 1930(35세) ○ 북경에서 열린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대표회의 참석, 백야 김좌진의 「재만한민족총연합회」를 중심으로 만주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키로 결의 1931(36세) ○ 일제의 본격적인 만주 침략으로 상해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 조직을 확대하고 기관지 「남화통신」 간행 ○ 이회영, 정화암과 함께 「항일구국연맹」 조직, 기관지 「자유신문」 발행으로 항일투쟁 선전 고취 ○ 제1차 상해사변 시 일본의 기관 및 군사시설 파괴, 요인암살, 반역자 처단, 반일 선전을 목적으로 「흑색공포단」 조직 1932(37세) ○ 일본 순사 주구 3명 처단, 일본 수송선 1만톤급 대파, 일본병영과 일본총영사관에 폭탄 투척 1933(38세) ○ 중국 본토 침략을 위한 일제군부 수뇌부의 상해 육삼정 회동시 회의장 습격 주역으로 선정되어 협력자 이강훈, 원심창과 함께 3월 17일 거사 단행을 위해 회의장 주변 대기 중 미리 정보를 탐지한 일본경찰에 의해 두 동지와 함께 현장에서 체포 1934(39세) ○ 6월 5일 무기징역으로 나가사키 우가미구치소 복역중 옥중 순국(형무소 공동묘지 안장) ○ 3의사(백정기, 이봉창, 윤봉길) 효창공원 봉장 1946년 ○ 2-3월 사이 백범 김구가 중심이 되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발굴 ○ 6월 15일 부산공설운동장에서 3의사 추모식 거행 ○ 6월 16일 서울 종로 태고사에서 3의사 유골 안치 ○ 7월 6일 국민장 거행,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 봉장 1963년 ○ 3월 1일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독립장 추서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