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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25년 7월 Column 편집위원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들로 구성되어 있어 방어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초 기에는 중공군이 주도권을 잡고 고지를 점령했지만, 국군과 유엔군도 7월 15일부터 반격에 나서 치열한 공방 끝에 금성천 이남 지역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금성천 북안의 주요 고지들은 중공군이 점 령한 채로 전투가 마무리되었고, 결과적으로 국군 은 약 170㎢의 영토를 상실하게 되었다. 중공군은 약 40km에 걸친 전선에서 평균 4km가량 남하해 방 어선을 밀어냈고, 국군은 전방 일부 전초선만을 확 보한 상태로 휴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전투는 양 측 모두에게 큰 희생을 안겼으며, 유엔군 공식 집계 에 따르면 국군은 1,701명이 전사하고 7,548명이 부 상, 4,136명이 실종 또는 포로가 되었고, 중공군은 27,216명이 전사하고 38,700명이 부상한 것으로 발 표되었다. 금성지구 전투의 기억, 국가의 책무와 공동체적 책임 금성지구 전투는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 중 하나 로,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하며 전 쟁의 소모적 성격을 극대화한 대표적 사례였다. 이 전투의 결과, 1951년과 1953년 두 차례에 걸쳐 합 의된 군사분계선은 최종적으로 금남천 이북을 수복 하지 못한 채 조정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금성 지 구 돌출부의 절반을 상실한 채 방어선을 금성천 남 쪽으로 재조정하며 후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이 전투는 국군이 자체 지휘하에 방어 작전을 수 행하며 작전 운용 능력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전 환점으로 평가된다. 이는 국군이 점차 독자적인 전 투 주체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 닌다. 금성지구 전투는 휴전 직전까지 이어진 치열한 최 후의 격전이자, 수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멈춰 선 전 선이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우다 산화한 국군과 유 엔군, 생사조차 확인되지 못한 포로들, 그리고 여전 히 전적지에 묻혀 있는 유해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는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노력을 통해, 전쟁의 희생을 역사 속에 복 원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의 책무이자 도덕적 의무 이다. 금성지구 전투를 기억하는 것은 국가 안보 의 식과 국민 통합의 중요한 기반이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초석이다. 또한, 평화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길이자, 살아남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무이자 공동체적 소명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햄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을 전공한 후, 이화여대 교양영어강사, 교육부 행정사무관, 전쟁기념관 학예사로 근무했 다. 논문으로는 「셰익스피어의 Hamlet에 나타난 희극적 요소 고찰」, 「이중 언어 학습자의 영어사전 사용법 사례연구」가 있다. 주요 저술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Pear l S. Buck 정신을 기리며」, 「수주(樹州) 변영로(邊榮魯) 시인이 추구한 유토피아(Utopia) ‘시’와, 그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술’」, 「수리남 참전 용사들을 기억하며」, 「Silent, but Unforgotten Heroes: Mexico」, 「명예로운 휴전(Honorable Armistice)」 등의 글이 있다. 필자 윤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