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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김동수 삼일공업고등학교 명예교장(보훈아너스클럽 위원장) 19 령의 삼위일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김 교장 은 특히 삼일학교를 설립한 분 중 임면수 선생은 나 라가 망하자 온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났다고 했다. 결국 임면수는 일제 경찰에 잡 혀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0년 병보석되 었지만, 후유증으로 곧 순국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삼일학교는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라 해서 ‘민족학 교’라고 한다고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냈다. 특히 최 근 박환 교수(전 수원대)가 올해 『필동 임면수 평전』 을 간행했다고 하며, 임면수 선생을 발굴하고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40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조선총 독부는 ‘삼일학교’가 ‘3·1운동’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팔달심상소학교’로 강제 개명시켰고, 해방 후 1946 년 9월에 다시 ‘삼일’이라는 이름을 회복하는 등 삼 일학교는 고난의 역사를 함께 해온 ‘민족학교’라고 거듭 강조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을 들은 수원 시민들은 삼일학교 교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일본 의 핍박에도 굳세게 버틴 삼일학교였기에 수원 시민 들에게는 해방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의미있는 공간 이었던 것이죠. 이런 시민들의 마음에 부응하듯 삼 일학교는 밤새 태극기를 만들어 운집한 시민들에게 나눠줬고, 수원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삼일학 교 교정이 떠나가라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몇 몇 인사들의 강연을 중심으로 한 ‘배달겨레 해방 경 축 대회’를 열어 자축의 시간을 보내는 등 삼일학교 는 광복의 기쁨을 수원 시민과 함께한 수원 시민의 학교였습니다.” 교장 취임 후 변화와 혁신 도모, 큰 성과 김 교장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삼일공고 교장에 취 임한 이후 ‘개혁과 혁신’으로 학교 발전에 크게 기 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독립운동의 유산을 품 은 학교’라는 데 주목하여 과거의 구태와 안일을 떨 쳐버리고 과감한 구조 개혁과 혁신으로 삼일공고가 ‘환골탈태’하여 근래 ‘명문학교’로 부상하는 데 앞장 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교 발전과 혁신을 위한, 그러한 과감한 개혁의 동기나 배경, 그 출발점을 어디서 찾았는지 물었다. “제가 1990년 3월 삼일공고에 부임하면서 처음 들었던 이야기가 ‘쌈통학교’였습니다. 처음에는 내 가 근무해야 할 학교가 ‘쌈통학교’, ‘삼일○통학교’였 다는 사실에 좌절도 했지만, 언젠가는 내가 교장이 되어 학교를 명문학교로 바꿔 놓겠다는 의지가 생겨 났습니다. 그래서 학교의 역사를 조금씩 알아갔고, 삼일공고의 역사가 다른 학교에 비해 매우 흥미롭다 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교장이 된 후 학생들에게 그동안 삼일공고 역사 7월 5일 공주교대에서 열린 ‘광복 80주년과 유관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하고 있는 김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