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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25년 8월 순국 특별 초대석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동수 삼일공업고등학교 명예교장(보훈아너스클럽 위원장) 함으로써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 마침내 적지 않 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김 교장의 발표에 따르면 1990년 3월 부임 당시 만 해도 경기도 수원 지역사회 등에서 매우 저평가 되고 있던 삼일공고에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김 교장 등의 지속적이며 끈질긴 노력 끝에 최근에 는 삼일공고가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문학교’로 부 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김 교장을 만나 좀더 상세 한 내용을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김 교장은 국가보 훈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훈아너스클럽’ 위원장도 맡고 있었다. 지난 7월 21일(월) 오후 경기도 수원의 화성(華城,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안에 있는 유 서깊은 삼일공고의 역사관을 찾았다. 삼일공고 정문 바로 앞에는 화성의 북암문(北暗門)이 있었고, 오른 쪽(동쪽)은 연무대와 창룡문(蒼龍門), 왼쪽(서북쪽)은 그 유명한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이 지척이었다. 학교 정문 왼쪽의 전광판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한 졸업생 들이 자랑스럽게 소개되고 있었다. 김 교장은 지난 7월 초 학술대회에서 처음 봤 는데 도 인터뷰 요청차 전화연락을 했을 때 흔쾌하게 수 락해주었다. 오랫동안 교직에 봉사한 베테랑다운 여 유와 친화력이 느껴졌다. 김 교장은 올해 2월 삼일공 고 현직 교장에서 물러나 현재는 명예교장으로서 올 8월 말 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먼저 김 교장께 삼일공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 라고 부탁했다. 김 교장은 1990년 3월 이 학교에 부 임하여 올해 2월 교장에서 물러나기까지 무려 35년 간 근무했고, 두 권의 교사를 펴내기도 했다. 자랑스런 ‘민족학교’ 삼일학교의 후신 삼일공업 고등학교 김 교장은 삼일공고의 전신은 삼일학교라면서 이 학교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삼일학교는 대한제국이 열강의 각축장이 된 1902년, 수원의 뜻있는 유지였던 임면수 선생, 이하 영 목사 등이 모여 「어서어서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모른다. 어서 배워서 알아야 한다. 국가 독립 을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라는 구호 아래 보시동 교회(현 종로교회) 안에서 개교한 수원 지역 최초의 근대식 학교였습니다.” “삼일학교는 처음에는 여학생 3명, 남학생 11명, 총 14명의 영세한 규모로 출발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워 폐교 위기까지 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 요. 그럴 때마다 수원의 유지들이 거금을 내놓기도 했고, 종로교회 교인들도 헌금을 내는 등 폐교 위기 에서 간신히 유지되어 수원 시민들이 지켜낸 진정한 민족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삼일’이라는 명칭은 기독교의 성부와 성자와 성 김동수 교장의 저서 『삼일학원 116년사, 삼일공업고등학교 50년사』 와 ‘삼일학원120년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삼일학원 120년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