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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25년 7월 Column 편집위원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궁극적으로 화천댐에 대한 간접적인 압박력을 확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화천댐 자체가 직접적인 공세 목표는 아니었더라도 잠재적 통제권 확보는 작 전 구상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고려사항이었다. 2. 중국의 6·25전쟁 개입 명분과 정전협정을 겨냥 한 정치심리전 정전협정을 앞둔 금성지구 전투는 지형적 요충지 확보와 정치적·심리적 목적이 결합된 총체적 전략 작 전이었다. 중국은 전쟁 말기, 정전 협상이 실질적으 로 진전되자 마지막 대규모 공세를 통해 중공군이 전 쟁의 주도권을 쥐고 종전을 맞이했다는 인식을 대내 외적으로 확산시키고, 전선을 직선화하며 지형적으 로 유리한 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전쟁의 마지막 국면 에서 승리한 당사자임을 주장할 명분을 구축하려 하 였다. 이에 맞서 유엔군과 국군은 해당 지역을 사수 함으로써 정전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 는 전략적 지형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3.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과 보복 공세 1952년 10월 초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진행되던 휴전회담은 포로 교 환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또다시 결렬 되었다. 휴전회담이 결렬되자 철원 북 방 백마고지와 김화 오성산 동남방 능 선인 저격능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 어졌다. 그러나, 1953년 3월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하자 양측의 휴전회담 은 급속도로 진전이 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포로 문제에 대한 합의 를 보았고, 군사분계선은 실제 접촉선 에 근거하여 6월 16일 판문점에서 새 로 그었다. 그러나 전쟁 당사국이었던 대한민국을 배제한 채 진행된 휴전회 담에 대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거세게 반대하면서, 1953년 6월 18일 새벽, 거제도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송환을 고지쟁탈전이 벌어졌던 주요 전투지역과 군사분계선(국가기록원 제공) 1953년 7월 중공군 최후공세 지도(군사편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