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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뒷산 중턱에는 삼산루(三山樓)란 정자가 있고 그 앞에 연지(蓮池)가 있었으며, 객시옆 향사당(鄕射堂) 뒤에는 어진 정사를 베푼 동주(東州) 중봉(重峰) 여헌(旅憲) 세분 현감(縣監)을 제향(祭享)하던 영모사(永慕祠) 사당이 있었다고 옛 지리지에 기록이 남아있는 역사와 전통이 깃든 마을이다. 갑오경장이후 근대화 과정에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 봉기 때 동헌을 왜헌병에게 빼앗긴 군청은 아사(衙舍)터에 새로 건설하고 왜병이 차지하고 있던 동헌은 경찰서로 변하고 객사터에 삼산초등학교가 개교되고 동헌앞 작은 관아(官衙)에 우편소가 개소되는 등 마을은 급격하게 변모하였으며,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통폐합에 의하여 우리 마을은 이곳 동변리(東邊里)와 하장리(下獐里)와 합병하여 삼산리(三山里)라 하고 중앙 사거리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정할때 서북쪽 우리마을은 삼산4리가 되었으며, 우편소는 우체국으로 개명과 함께 삼산2리로 옮겨가고 우리 마을에는 군청 옆에 금융조합이 개점되고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왕산학교가 서는 등 행정 치안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광복후에도 일제가 세웠던 신사(神社)자리에 군내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청이 들어서고 왕산학교는 보은 중학교 여자부가 사용하여 뒤에 여자 학교에 모태가 되었으며, 농업기반공사 전매서 엽연초생산조합이 잇달아 세워졌으나 도시발전에 따라 교육청과 경찰서는 장신리로 이전하고 군청은 이평리로 이전되고 그 자리에 읍사무소가 들어셨다. 금융조합은 농협으로 변하여 지금도 우리 마을에 군지부와 보은농협 보은지점이 남아있으며, 1986년도에 마을발전으로 마을을 구분하여 삼산6리로 분리 독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