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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칼럼 • 금성(金城)지구 전투: 정전협정 직전의 마지막 공세, 마지막 저지선 17 전쟁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했으며, 남한 내에 서 확산되었던 북진 통일론과 휴전 반대 여론을 무 력으로 억제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군사적 으로는 금성 돌출부를 점령함으로써 전선의 형세를  유리하게 재편하고, 국군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려는  전략적 목표가 명확히 설정되어 있었다. 외교적 측 면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  조치가 정전협상 과정에서 중공군을 자극하였고, 이 는 금성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세로 이어지는 도화선 이 되었다. 1. 금성돌출부의 지형적 특성과 후방에 위치한 화 천댐의 전략적 중요성 정전협정 체결을 목전에 둔 1953년 7월, 금성지구 에서 벌어진 전투는 단순한 국지적 충돌을 넘어, 전 후 군사적 주도권과 군사분계선 확정을 둘러싼 전략 적 힘겨루기의 결정판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북방에  위치한 금성돌출부는 유엔군이 1951년 추계공세를  통해 확보한 이후, 중동부 전선에서 유일하게 북측 으로 돌출된 고지대를 형성하며 중대한 전략적 요충 지로 부상하였다. 약 22km에 걸쳐 반타원형으로  형 성된 이 지역은 감제(瞰制) 및 화력 통제에 유리한 군 사적 이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전선의 균형을 무너 뜨린 채 적의 집중포화를 유도할 수 있는 취약 지대 였다. 즉, 고지의 관측 및 화력 우위는 아군에 유리했 으나, 전선의 돌출부는 방어에 취약했다. 이러한 이 중적 특성으로 인해 중공군은 전선을 직선화하고 방 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돌출부 제거를 목표로 삼 아, 1953년 6월부터 돌출부 주변 주요 고지를 장악 하고, 7월 13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또한, 금성돌출부 남서 방향 후방에 위치한 화천 댐은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에 의해 건설된 대규모  수력발전 시설로, 6·25전쟁 당시 남한의 만성적 전 력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중추적 기반이자, 동시에  군사작전의 핵심 자산이었다. 수문 조작을 통한 방 류는 적의 도하를 차단하거나 아군 작전 지역을 조 절하는 수단이었으며. 이로 인해 화천댐은 단지 경 제적 인프라를 넘어 작전의 공간적 조건을 규정짓는  전략 거점으로 인식되었다. 공산군 입장에서는 금성 돌출부를 장악함으로써 후방 작전 범위를 확대하고,  고(故) 정인학 일등중사의 유품(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1953년 7월 27일 10시 판문점에서 유엔측 수석대표 해리슨 미 육군중장 과 공산군측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이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국가 기록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