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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진 애국지사 연보
1891년 3월 1일 영천 화북면 오산리에서 출생하여 15세 때 부터 25세까지 당대 석학이신 조병규 선생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국권회복을 위해 동지 규합에 전력하던 중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동심동지인 홍종현, 조재복, 조주환과 함께 혈맹으로 동년 4월 12일 영천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직접 태극기를 제작하여 만세운동을 고창하다가 체포되어 극악한 고문과 태형 90대를 맞고 다시는 독립운동을 할 수 없는 불구의 몸으로 출옥하였으나 굴하지 않고 후학들에게 독립운동 사상을 주입하는 등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61년 7월 16일 '우리의 적은 왜놈이다' 라는 글을 남기고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치니 정부에서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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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현 애국지사 연보
1890년 1월 3일 군위 외량리에서 출생하여 7세부터 부친에게 천자문 수학하였으며, 11세 때 모친상을 당해 효성을 다해 상례를 치루고, 이후 부친 봉양에 효성을 다함에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결혼 후에는 처가인 영천 화북 입석에서 거주하였다. 1919년 4월 12일 영천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시위 중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융희황제 국장일에 숭인동 노상에서 혈서를 쓰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피체되어 징역 10개월형을 살았다. 이후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다가 다시 피체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출감하였다.
1977년 10월 29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치니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