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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확정된 지 불과 4개월 지난 1973년 3월에 ‘10월 유신’을 기념하기 위한 탑이 관문교차로(육대입구에 있는 삼거리)에 높이 9m로 세워졌다. 탑의 높이 때문에 모두들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급하게 유신탑을 세운 것은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당시의 정치일정을 위해서였다. 폭력적인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된 유신헌법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연이어 진행되는 대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의 와중에서 더욱 유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유신탑을 시내 한복판에 세웠던 것이다. 유신탑을 세운지 3년이 지난 뒤에 교통체증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철거하여 1976년 8월, 중원로터리 옆에 있는 시립도서관 정원에 옮겨 놓았다. 크기가 처음의 절반도 되지 않는 높이 3.5m, 넓이 2m로 축소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저격당하기 3년 전이었다. 이제는 중원로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十月維新’이라는 글자는 나무에 가려져 아예 보이지 않고 유신헌법책을 들고 있는 4명에게는 온통 검은 색 페인트를 칠해놓았다. 얼굴도 검고, 옷도 검고, 손발도 검다. 지금은 시립도서관이 이전하여 장난감도서관과 진해문화원 입구가 되었다. 이 기념탑은 5·18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난 뒤인 1980년 6월, 전두환 정권에 의해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이어지는데 대해 의분을 참지 못한 20살의 열혈청년 박영주에 의해 인분(人糞)을 상징하는 노란색 페인트 1통을 덮어쓰는 수모를 당했다. 벌써 40여년 전의 일이다. 출처 : 경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