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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25년 7월 Column 편집위원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1953년 7월의 금성지구 전투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전에 벌어진 6·25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격전으로, 중공군 의 총공세에 맞서 국군이 전선을 사수함으로써 정전협정 성립의 군사적 기반을 마련한 최후의 공세이자 마지막 저지선으로 평가된다. 금성(金城)지구 전투: 정전협정 직전의 마지막 공세, 마지막 저지선 1953년 7월 중공군 대규모 공세 저지, 휴전협정 발판 금성지구 전투 기억은 국가 책무, 공동체적 소명 글ㅣ윤영미(월간 『순국』 편집위원) 73년 만의 귀향, 휴전 직전 전사한 정인학 일등 중사 - 국방부가 발굴한 총 13,383구의 유해 중 249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호국영웅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을 불과 이틀 앞두고 강원도 철원 금성지구 전선에서 전사한 국군 제7 사 단 소속 정인학 일등중사(현 계급 하사)의 유해가, 전사 73년 만인 2025년 3월 공식적으로 신원이 확인 되어 유가족에게 인도되었다. 정인학 일등중사의 유해는 2024년 11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강원도 철 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로 발견한 것으로, 고인의 인식표가 신원 확인의 결정적 인 단 서로 작용하였다. 1932년 12월, 9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1951년 9월 15일, 18세의 나이로 육군 제7사단에 입대 하였 다. 이후 2년간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며 전장을 누비던 그는 1953년 7월 중순, 금성지구에서 벌어진 적근 산– 삼현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국군은 정전협정을 불과 며칠 앞둔 상황에서도 ‘단 한 치의 땅도 내줄 수 없다’라는 결연한 의지로 진지를 끝까지 사수하였으며, 정 중사는 이러한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하 던 중 20세의 나이로 산화하였다. 휴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단일 전투로서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금성지구 전투 금성지구 전투는 1953년 휴전을 앞두고 강원도 철원군 김화 지역의 금성 돌출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6 ·25 전쟁 종전 국면의 긴장과 충돌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대규모 전투였다. 정치적 측면에서 중공 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