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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원을 조성하며 한라영산의 혈기가 뼏쳐 솟고 녹고뫼 정기가 감겨 서린 땅. 우리 마을 주민들의 끈끈한 삶을 지켜본 '자자니마를' 동산에 추모원을조성한다. 1948년 4.3사건, 그 광란이 몰고 온 비극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불행한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평화로운 우리 마을도 진압 작전이란 이름아래 초토화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좌우이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순박하게 살아온 마을 주민 일백여명이 무고하게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또한 1950년 6.25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이었다. 당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꽃다운 젊은이들이 결연히 출정하여 치열한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아홉명의 용사가 장렬히 산화했다. 2014년 주민 총의로 영령님을 모시는 영역을 조성함이 절실하다는 취지로 제주도의 사업예산을 지원받아 이 추모원을 조성하게 이르렀다. 만시지탄이나 우리의 염원이 풀리는 것 같아 감회가 깊다. 애초, 충혼비는 1963년 매을재건 청년회에서 '능선이동산' 로변에 박씨 열녀비와 함께 세워져 있었다. 장소와 석물 등이 미흡하여 충혼비는 개수하고 박씨 열녀비는 유적 원형 보존차원에서 그대로 옮겨 세웠으며 채씨 열녀비는 향토사적 속수삼강록, 제주충효열지에 등재된 자료를 근거로 새로 세웠다. 추모원의 조성을 영령님들이 영원한 안식처가 마련된 것이다. 님들도 이 정든 옛 동산에 모여 편히 쉬고 정도 나누며 맺힌 한도 내려 놓으시고 고이 영면하시리다. 이 추모원은 우리들의 성지가 되고 후세들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와 충.효.예의 산 교육장으로 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님들의 유지를 반드는 우리들의 최선의 도리라 여기며, 추모원을 영세에 보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