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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 헌병대의 시원은 1896년 1월 25일 파견한 '임시헌병대'였다. 임시헌병대는 일본이 조선에 가설한 서울 부산간 군용전신선의 경비를 임무로 하였다. 군용전신선은 일본이 청일전쟁(1894~1895년)을 앞두고 시급히 군 통신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기존 전신선을 접수하고, 자체적으로 가설한 것이었다. 조선인들은 일본의 침략에 대해 의병을 조직하고 저항운동을 벌였는데, 전신선을 절단하거나 전주를 파괴하기도 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시작된 의병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1909년까지 계속되었다. 1907년 8월 의병투쟁이 격화되자 조선에 파견한 헌병대의 조직과 규모를 확대했다. 1907년 10월 헌병을 증파하여 '한국주차헌병대'를 편성하고, 경성(서울)에 본부를, 전국 7곳(경성, 천안, 전남 영산포, 평양, 부산, 함흥, 만주 간도 용정)에 분견소를 설치하여 46개소를 두었다. 한편으로 1908년 이후 헌병보조원제도를 도입하여 지역 정황에 정통한 현지인을 헌병 지배체제 안으로 포섭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조선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직위를 잃은 군인, 면직된 경찰관을 헌병보조원으로 채용해 그들이 의병에 가담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헌병보조원 운영에 대한 전권은 일본군 헌병대장에게 귀속시켰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헌병대 조직의 인원은 3배 가까이 증원됐다. 헌병 1명당 2~3명의 보조원을 두어 전국에 분산 배치되었고 헌병보조원의 출신은 순사, 학생, 농부, 상인, 의병, 귀순자, 무직자 등 다양했다. 특히 군대 해산으로 직업을 잃은 전직 군인이 전체의 21%에 달하여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