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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 마산은 예부터 국가의 세금을 거두고 보관했던 기관인 조창이 있었던 곳으로 상인들의 상업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마산에 외국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899년 마산이 개항되고 공동조계지가 설정되면서였다. 이후 마산항에는 외국군함이 출입하기 시작했고, 특히 러시아와 일본의 군함이 대다수였다. 러시아와 일본은 해군전략의 요충지인 진해만을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조선은 1900년 3월 군대를 주둔시킬수 있는 미신의 조차지를 러시아에 허용했지만, 1903년 러시아는 여러 상황으로 미산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마산과 진해만에는 일본군과 군함이 집결했다. 마산은 1905년 경부선과 연결된 군용철도 마산선(마산삼랑진)이 완성되면서 일본의 조선침략 교두보가 되었고, 1906년 8월 진해만 일대가 군항으로 설정되면서 일본군의 군사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11년 1월부터 마산항은 군사적 이유로 통상이 제한되었지만, 일본에 한해서는 일부 허가되었다. 계속된 인구유입, 마산과 진해의 군사시설과 시가지 건설 등으로 마산의 경제가 활성화 되었고, 인구유입이 계속되면서 신도시가 조성되어 1914년 부(府)로 승격되었다. '헌병분견대'란? 조선에 일본군 헌병이 배치된 것은 1896년이었다. 임시조직이었던 헌병대는 러일전쟁을 앞둔 1903년 12월 '한국주차헌병대'로 개칭하여 조직을 재편하고 러일전쟁이 끝난 1906년 10월에는 제14헌병대'로 축소 편성했다. 그러나 1907년 7월 이후 의병운동이 조선 전국으로 확산되자 10월 헌병제도를 제정하여 ;한국주차군헌병대'로 재편성하였고, 헌병대사령부의 하위조직으로 각 도에 헌병대본부를 설치하였다. 헌병대본부에는 헌병분대, 헌병파견대, 헌병분견대를 두어 지역사회 깊숙히 통제를 시작했고, 헌병은 조선에서 무력 통제기관으로 자리했다. 이후 일본은 1910년 6월 헌병과 경찰을 하나로 통합하는 헌병경찰제도를 시행하여 헌병경찰을 탄생시켰다. 헌병대사령관이 총괄하는 헌병결찰은 1910년 3월 현재, 장교이하 2369명, 보조원 4392명으로 구성되었다. 마산에는 1904년 헌병이 파견되었고, 1906년 3월 대구헌병분대 마산헌병분견소가 설치되었다. 1910년 12월 마산헌병분대로, 1929년 4월 마산헌병분견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본군은 헌병대를 마산에 영구 주둔시키기 위해 1912년 7월 마산헌병분대 청사를 완공했고, 이 건물은 현재까지 헌병분견대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지역의 일본군 헌병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