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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25년 8월 Column  명사 칼럼 ② 작은 소리 큰 울림 심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 은식 선생은 의병에 대해 “의병은 국수(國粹)다” 라 고 하였다. 즉 우리민족이 가진 고유의 역사적 전통 과 정신이라고 표현하였다. 의병항쟁은 1910년 8월 국망 이후에는 만주,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군의 항 일무장투쟁으로 이어졌다. 독립운동사의 ‘독립전쟁 50년’이란 말은 1895년 10월 8일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의 항일 독립투쟁을 말한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지금 도 현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 월 14일 광복 전일까지 특별히 목숨을 희 생하신 분들을 ‘순국선열(殉國先烈)’이라 한다. 순국선열이란 용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정원에서 1939년 11월 최초로 사 용한 숭고한 용어다. 독립유공자 예우법에 순국선열을 명시하고 국민의례에서 묵념 대상인 이유다. 일제강점기동안 독립투쟁하다가 사망 하였다 하여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순국선 열의 칭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1960년 보 건사회부 의결로 순국선열지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전사, 형사(刑死), 절사(節死), 피살, 옥사, 옥병사(獄病死) 등 6개 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이 범위에 포함된 순국선열은 15만여 명이며, 서훈을 받은 분은 3천 6백명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1997년 ‘순국선열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으며, 사단법인 대 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가 매년 순국선열의 ‘영령추 모제’를 서대문 독립공원내 독립관에서 엄숙하고 성 대하게 봉행하고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이 본격 시작된 을미사변 이후 나 라와 민족을 구하고자 목숨을 자발적으로 바친 의 병, 독립군 등의 수 많은 독립투사들은 무명(無名)이 며, 후손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순국선열 후손들의 삶은 광복 80년이 지나도 그 고된 삶이 지속되고 있 는 상황이다. 일제가 독립투사의 후손들이 재기할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공원에 있는 ‘순국선열 추념탑’과 독립운동가 수난 장면을 나타 낸 부조의 한 장면(한국관광공사 제공)